[삶과문화] 전문가 살리기

남상훈 2021. 1. 8. 2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분야마다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으로 무장한 사람들 있어
항간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소신있는 그들 견해가 통했으면

한때 뉴욕 맨해튼의 스테이크하우스, 스미스앤드월런스키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이른 예약이 필수였다. 겉은 바싹하고 안은 육즙이 살아있는 숙성고기가 와인 한 잔과 잘 어우러져 입에 착 붙는다는 것이 그 레스토랑의 인기 비결이다. 맛도 맛이지만, 그곳에 예약이 몰려들었던 진짜 이유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의 점심’ 이벤트가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2000년부터 연말 자선 행사로 자신과 점심을 하며 투자에 관해 뭐든 물어볼 수 있는 식사 티켓을 경매에 올려놓았다. 점심식사의 낙찰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말 자선 행사의 소소한 수준이 아니다. 2019년에는 자그마치 456만달러(약 53억원)까지 치솟았다.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주식시장이 다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버핏의 전성기도 끝났다는 말이 살짝 떠돌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버핏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가 어느 종목에 관심을 두는지에 대해 전 세계 기자들과 투자자들은 촉을 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버핏과의 식사비가 어마어마한 이유는 단순히 유명인의 이름값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그는 투자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이자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그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마스터’라고 불린다. 마스터의 말은 믿을 만하고, 그래서 파급효과가 있다. 그런데 전문성과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 주시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통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부른다.

문화 방면의 인플루언서는 개인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이 구입한 제품을 품평하거나 영화나 책, 심지어 정치에 대한 견해도 밝힌다. 그는 다수의 추종자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며, 특정 취향과 스타일을 유통시키는 사람이다. 문화적 취향은 쉽게 가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오직 축적해온 안목과 미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미적 방향성을 지닌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심미적인 내공이 바로 우리가 인플루언서의 선택을 존중하며 따라 하는 이유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뭇사람들과는 달리, 인플루언서는 과감하게 ‘이것이 올바르다’, ‘이것이 나의 선택이다’라고 밝힐 줄 안다. 자신감 넘치는 인플루언서의 발언은 사람을 끄는 마법 같은 매력이 있다.

인플루언서 중에는 간혹 업체에서 후원을 받고 평을 쓰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반드시 돈을 받은 사실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돈과 잘못 얽히는 바람에 말과 글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하면 인플루언서로서의 지위는 끝난다고 봐야 한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그의 의견이 자발적이라는 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인플루언서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에 그 둘을 구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여러 대중강의 채널에서 골라 들을 수 있게 된 시대이다. 그러다보니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게 말하는 입담 좋은 인플루언서가 전문가로 떠오르기도 하고, 상업적인 목적에서 전문가로 과다 포장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단지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려고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뒤를 캐는 네티즌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들은 전문가가 온갖 현상을 다 말로 짚어주길 바라면서, 전문가의 진정어린 소견은 진지하게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과연 누구를 전문가로 규정하고 믿어야 할지 애매하다는 그들의 변명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말로 필요한 때에 전문가들은 모두 숨어버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해본다. 각 분야마다 첨단 지식과 기술력, 최신 장비, 숙달된 기능인의 도움을 받아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문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항간에 말해지는 것들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전문가의 소신 있는 견해가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