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을 담아낸 라면 한 그릇 [책과 삶]
[경향신문]
라면의 재발견
김정현·한종수 지음
따비 | 244쪽 | 1만5000원
2016년 5월, 한 청년의 가방과 소지품을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숨진 김군의 유품이었다. 시선을 끈 건 컵라면 하나와 나무젓가락이었다. 라면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삐 일했으나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았던, 19세 청년의 처지를 상징했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부자들 간식으로 등장한 것도 ‘채끝등심 짜파구리’였다. 라면은 곧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인스턴트 라면은 불황과 굶주림 속에 탄생했다.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은 1963년 9월15일 세상에 나왔다.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된 지 5년 만이다. 가격은 10원. 라면 개발의 결정적 계기가 된 ‘꿀꿀이죽’ 가격의 딱 두배였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라면은 더 이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혹은 열량이나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취향을 드러내고 즐기는 대상, 하나의 문화가 됐다.
책은 라면의 기원부터 한국인의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까지, 라면의 역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아냈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사회가 요구했던 라면과, 라면이 이끌었던 삶의 변화를 추적해봤다”며 “그 속에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라면이 드러나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일대기를 다루는 동시에, ‘문학과 라면’ ‘북한의 라면’ ‘영화 속 라면’ 등 라면과 관련된 여러 읽을 거리가 녹아있다.
읽기 전 주의할 점이 있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늦은 밤에는 읽지 말 것. 어느새 가스불을 켜고 라면을 끓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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