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의사로 키운 단 한 명의 환자 [책과 삶]
[경향신문]
사람을 살린다는 것
엘렌 드 비세르 지음·송연수 옮김
황소자리 | 356쪽 | 1만7000원
불현듯 찾아온 질병이나 큰 사고를 겪은 중환자에게 의료진은 절대적인 존재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는 환자는 의료진의 한마디 한마디에 환희와 공포가 교차한다. 그 순간 환자에게 잊을 수 없는 의료진이 있다면, 의료진에게도 그런 환자가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가 의료진일 것이고, 그 동행은 필연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낳는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80여명의 의료진이 털어놓은 ‘내 인생의 환자’ 이야기다. 네덜란드 일간지 ‘폴크스크란트’에 2년간 연재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칼럼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어느 늦은 밤, 의식불명의 여성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남편에 따르면 그는 8층 아파트에서 투신했고, 병원 내 의료진이 총동원돼 온몸이 망가진 환자를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마취과 전공의 2년차였던 젊은 의사 롭 슬라펜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을 살리려 전 의료진이 매달리는 상황을 ‘낭비’라고 여긴다. 하지만 반년 후 환자가 호전되면서 자신이 “성급하고 기막힌” 판단을 했음을 알게 된다. 깨어난 여성은 남편이 발코니에서 자신을 떠밀었다고 증언한다. 이 사건은 그의 직업관을 바꿔놓았다. 환자가 자살을 기도했든 범죄자이든, 아픈 이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믿는다.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을 의탁하지만, 그 의사를 의사로 키우는 것 역시 환자들이다. 책에는 그렇게 ‘나를 키운’ 단 한 명의 환자, 의료현장에서의 회한과 실수, 두려움과 보람을 진솔하게 쓴 의료진 이야기가 담겼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전 사회가 감염병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의료진에게 빚지고 있는 요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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