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 '누더기' 오명 중대재해법..발의 4년 만에 국회 통과

심진용 기자 입력 2021. 1. 8. 21:02 수정 2021. 1. 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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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 32.1%, 5인 미만 사업장서 발생..당초 제정 취지 무색
김용균 어머니 항의하다 퇴장..정의당 "거대 양당 눈부신 타협"
어정쩡한 정부·재계 로비에 '개악'..여야 내부서도 아쉬움 토로

[경향신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대 국회 시절인 2017년 4월 최초 입법 발의한 지 4년 만이다.

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이 참여하고, 여야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매년 2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현실에서 법 제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전방위적으로 후퇴한 내용으로 법이 만들어지면서 당초의 법 제정 취지가 허물어진 점은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처리했다. 재석 의원 266명 중 164명이 찬성, 44명이 반대했다. 58명은 기권했다. 법안 내용 후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정의당 의원 전원이 기권했고, 국민의당은 반대 표결했다.

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가 미흡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법인·기관에도 5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사업주나 법인이 손해액의 5배 범위 안에서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 비해 대폭 후퇴했다는 지적이 많다.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3년간 산재사고의 32.1%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벌 총수 등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닌 안전관리업무 담당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문제도 해소되지 않았다. 공무원 처벌과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삭제됐다. 10억원 이하 벌금 등 처벌 수위도 원안보다 크게 낮아졌다.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와 재계의 집요한 로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정부안을 ‘가이드라인’ 삼은 여야도 논의마다 법안 내용을 후퇴시켰다.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배제 결정은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의 제의로 시작됐다. 발주처의 책임을 삭제하고 공무원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것 또한 정부안을 그대로 따랐다.

법안을 밀어붙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아쉬움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등에 대해 “이 문제를 주장했던 정의당과 김용균 어머님 이런 분들에게는 볼 낯이 없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은 본회의 처리 전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에 대해 재차 문제 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소위에서 의결한 법안”이라며 “신속하게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6일 동안 여야가 치열하게 토론했고, 아쉬운 점이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강욱 의원 등의 이견 제기에 대해 “그러면 민주당이 밀어붙여서 날치기하든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하라”고 반응했다.

전체회의를 참관하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막겠다는 것이냐”고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 나서 “법이 제정되는 이 자리가 결코 웃을 수 없는 서글픈 자리가 되었다”며 울먹였다. 같은 당 류호정 의원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을 차별하고 목숨값을 달리하는 대안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성동·김태흠·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토론을 펼쳤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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