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도적 범죄행위 '피고' 일본, 국가면제 뒤에 숨을 수 없다"

박은하·유설희 기자 2021. 1. 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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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법원 "절대규범 위반"..국제관습법보다 보편인권 원칙 우선
"개인 배상청구권, 1965년 청구권협정·2015년 합의로 해결 안 돼"
법조계 "재판받을 권리 진일보..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발판 마련"

[경향신문]

관심 쏠린 위안부 피해자 측 김강원 변호사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한 후 피해자 측 김강원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국내 법원이 일본을 상대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핵심적인 내용은 보편인권 원칙이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보다 우선이라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8일 “일본제국이 침략전쟁 중에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한 위안부 제도로 인해 상시적 폭력과 강제이동, 납치, 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이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 폭로로 위안부 문제가 국내외에 전면적으로 드러난 이후 약 30년 만에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법정에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았다.

■“반인도적 범죄에 국가면제 적용 불가”

이 사건의 피고는 ‘일본국’이다. 한국 법원이 주권국가인 일본을 상대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최대 쟁점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 원칙을 들어 재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나라 법원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재판부는 “국제규범 사이에서도 상위규범인 절대규범(국제강행규범)과 하위규범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국제강행규범(누구나 지켜야 하는 최고 수준의 규범)을 위반했다”며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해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납치 등 불법행위 일부가 한반도 내에서 이뤄졌고, 피해자들이 한국에 거주 중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한국 법원이 재판관할권도 갖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관련 합의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일본 국가에 있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서 군과 국가기관이 계획을 세워 위안소를 운영했고, 피해자들은 일본제국의 직간접적인 통제하에 일본 군인들의 성적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구체적 피해에 대해 “가혹한 성행위로 인한 상해, 성병, 원치 않은 임신, 안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산부인과 치료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됐으며, 제대로 된 의식주를 보장받지 못했다. 종전 이후에도 위안부였다는 이력이 불명예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상처가 됐다”고 밝혔다.

■“정의 회복 길 열려”

이날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7년5개월이 걸렸다. 이 소송은 고 배춘희 할머니 등이 국내 법원에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신청을 내면서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주권침해 등을 이유로 사건 송달을 거부하자 피해자들은 2015년 10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피해자들의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위한 발판이 되었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진일보시켰다”고 평가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아온 피해자들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 법정에서 사상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생존자들이 정의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

박은하·유설희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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