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주한대사 상호 교체 발표한 날, 더 꽁꽁 언 한·일관계
외교부, 일본 반발 의식한 논평
강창일 신임 대사 힘든 과제 안아
미 바이든 행정부 반응도 주목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8일 승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정부 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번 판결이 갖고 올 외교적 파장과 후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력화되고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 후유증 등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어서 일본의 반발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판결로 이미 바닥을 친 한·일관계를 개선할 여지마저 없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논평에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일 것’ 등을 추가했다. 일본 측 반발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1년 한국 대법원 판결과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국제적 강행규범은 인류 공통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으로 인종청소·노예제 등 반인도적 행위에 해당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의 성노예제이므로 강행규범에 반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이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이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 재판의 피고가 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일본 정부가 소유한 국내 자산 압류 등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실제 집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본의 외교적 자산을 제외하고 압류할 만한 자산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실질적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한·일 간 공방을 격화시켜 관계개선에 돌이키기 어려운 장애물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상의 큰 흐름인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국제적으로 비난 여론전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04년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 나치에 강제동원된 자국민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를 인정하지 않은 이른바 ‘페리니 판례’를 근거로 이번 판결을 ICJ에 제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판결은 공교롭게도 한·일 양국이 상호 대사 교체를 발표한 날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주일대사에 강창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임명했고, 일본 정부도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이스라엘 대사를 새 주한대사로 발령했다. 신임 대사들은 부임과 동시에 양국관계가 더욱 꼬여버린 셈이어서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번 판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한·일 간의 긴장을 더욱 팽팽하게 만든 이 판결은 중국·북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 동맹국 간 협력과 공동보조를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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