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옷장'은 특별한 곳이었지..상상을 열고 나온 공룡 판타지 [그림 책]
[경향신문]
쿵쿵
경혜원 글·그림
시공주니어 | 52쪽 | 1만3000원
어린 시절, 옷장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만백성을 발밑에 둔 호화 궁전의 발코니였고, 어떤 날은 홀로 표류된 무인도의 좁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남동생과 거실에서 잡기놀이를 하다가 ‘뛰지 말랬지!’ 엄마의 꾸지람을 듣고 조용히 숨어들던 곳도 바로 옷장이었다.
그림책 <쿵쿵> 속의 남매 민준이와 윤아에게도 옷장은 특별한 곳이다. 윤아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오빠 민준이에게 옷장을 함께 열어보자고 제안한다. 옷장 안에서 수상한 ‘쿵쿵’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민준이는 겁에 질린 듯하지만, 윤아 말이니 어쩔 수 없이 나선다. 그런데 웬걸! 문을 열어젖힌 옷장 안에서 공룡들과 나뭇잎, 덩굴 등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지고, 순식간에 방 안은 ‘쥬라기 공원’이 돼버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옷장 안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크앙’ 하고 난폭하게 뛰쳐나온다.
민준·윤아 남매는 힘을 모아 겨우 티라노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만, 또다시 ‘쿵쿵쿵쿵’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티라노보다 몇 배는 강해 보이는 거대 공룡이 나타나 티라노와 남매를 잡아채 현관문 밖으로 내쫓아버린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하는 그 사이, 티라노는 “흠~ 이제 어디 갈까”라고 묻는 아빠로 변해 있다. 아이들을 내보낸 뒤 어지러진 방 안을 둘러보며 한숨 쉬는 것 역시 거대 공룡이 아니라 팔짱을 낀 엄마다. 옷장 속에서 난데없이 쏟아져 나온 ‘쥬라기 공원’의 각본과 감독, 배우가 다름 아닌 아빠와 엄마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옷장에 대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처럼 재기발랄한 책이다. 옷장 문을 형상화한 접지, 선명한 색감과 다채로운 표정 묘사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공룡놀이에 빠진 한 가족의 시끌벅적한 풍경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쿵쿵>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다보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층간소음’이란 현실적 문제까지 녹여낸다. ‘쿵쿵’ 소음이 들릴 걸 알면서도 아이들과의 놀이에 합류해보는 아빠와, 그런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엄마, 베란다 창문을 열고 물끄러미 위층을 바라보는 아랫집 주민 모습까지…. ‘층간소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의 고민이 은근하게 담겨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갖는 현실적 한계와 아쉬움, 이 한계 위에서도 나날이 신나는 매일을 덧칠해가는 아이들의 동심이 어우러져 재미에 공감까지 더하는 책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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