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권이 주권 위에 있다"는 '위안부' 승소 판결의 울림

2021. 1. 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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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8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고 배춘희 할머니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첫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일본 측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 즉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은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인권이 국가의 주권에 앞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전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범죄로 보고, 엄중히 단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소송은 배 할머니 등이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1인당 1억원씩 위자료를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내면서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자신들을 속이거나 강제로 ‘위안부’로 차출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취지였다. 일본 측은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았고,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법원은 2016년 1월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겼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2019년까지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해 한국 법원은 강제로 공시송달 절차를 밟았다. 첫 변론은 2019년 11월에야 열렸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7년 반이 지났다. 그사이 소송을 낸 12명 중 배 할머니 등 7명이 별세했다. 10대 때 당한 전시 성범죄로 평생을 고생해 온 피해자들이 90대가 되어서야, 혹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승소 판결을 받아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불수용 입장을 밝히고, 판결 직후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예상해 왔던 바다. 앞으로도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앞세워 국제사회에 호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피해자 변호인단이 마지막 변론에서 밝혔듯, 국가 중심으로 국제법 질서가 편제됐던 과거와 달리 점차 국가의 위법행위로 피해 입은 개인에게 적절한 구제가 있어야 한다는 세계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도 독일 나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면제론이 배척당했다. 인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측 압박에 철거될 위기에 처했지만, ‘전시 여성인권’ 문제임을 강조해 국제적인 시민연대로 끝내 막아낸 일도 있었다.

일본이 전시에 저지른 군 ‘위안부’ 범죄는 덮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이 진정 문명국가라면, 꼼수를 찾을 게 아니라 피해 할머니들께 사죄부터 해야 한다. 승소한 피해자들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살아야 했느냐. 1억원도, 3억원도 싫다”며 일본의 사죄를 원한다는 억울한 심경을 다시 피력했다. 한국 사회와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달라는 피해자들의 일생을 건 호소에 부응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한·일 분쟁이 아니라, 끔찍한 전시 성폭력이라는 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 세계 시민들의 양심을 깨우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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