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인이 엄마·아빠다'
온라인 카페엔 '진정서 인증글' 줄이어
오모(33·여)씨에게 ‘어떻게 1인 시위를 하게 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시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 생후 16개월에 사망한 정인이가 살던 집 근처다. 오씨가 든 현수막에는 정인이의 사진과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문구가 담겨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씨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양부모를 엄하게 처벌해야한다는 서명을 받았다.
평소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그가 이렇게 혼자 시위를 계획해서 추운 날 거리에 선 마음은 무엇일까. 오씨는 “이렇게라도 돕고 싶었다”며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다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오씨의 둘째 딸은 정인이와 4개월 차이가 난다. 오씨는 “지난해 10월 기사를 처음 본 뒤부터 딸과 정인이가 겹쳐 보여서 일상생활이 안됐다”고 말했다. “일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밥도 못 먹겠고, 꼭 내 일인것만 같더라고요.” 누군가는 ‘대리외상증후군’(사건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 처럼 비탄에 빠지고 불안을 겪는 증상)이라고도 했다.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오씨는 여러번 울음을 터뜨렸다.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줬다. 죽기 전 세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지만,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양기관 등의 무관심은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오씨는 “아이가 죽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며 “그전부터도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많았는데 여전히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현재 정인이 사건에 쏟아지는 많은 관심들이 작은 변화라도 이끌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오씨는 “속상하지만 ‘이번엔 바뀔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행동한다”며 “많이 변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인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줘서 죽음이 더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카페 회원은 “정인이가 살아있을 때 한번도 보지 못했고,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이지만 정인이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남 일 같지 않다”며 “우리 아이를 볼때면 문득문득 ‘정인이도 이렇게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을텐데’란 생각이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이어 “인스타그램 등에서 진정서를 쓰자는 글들이 많은 것을 보면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감정적으로 과잉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감정만 앞세워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진정서를 쓰며 적극 나서는 것은 ‘또다른 정인이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다. 얼마 전 진정서를 보낸 김모(35·여)씨는 “진정서를 쓰고 흥분만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란 점도 잘 안다”면서도 “정부와 경찰, 관련 기관 등에 이렇게라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면 결국 시스템이 바뀌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아이의 엄마인 B씨도 아이들과 함께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정인이가 있는 곳에 가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다녀왔다“며 “정인이가 당한 심리적·육체적 학대들이 감정이임돼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란 생각이 멈추지 않아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왔다간 것을 보니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정인이가 조금은 웃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계속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B씨는 “아이를 셋이나 키우지만 그동안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미안하고 정인이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에게 손 내밀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활동하고, 아동학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정인이가 홀로 어둠 속에 잠들고 부모에게 학대를 받는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 하루 하루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박지원·유지혜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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