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문제에 위안부 판결까지..한일 관계 또 살얼음판(종합)

이국현 2021. 1. 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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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국제법 위반 유감, 받아들일 수 없다" 반발
정부 "법원 판단 존중..한일 위안부 합의는 공식 합의"
"위안부 판결, 피고가 일본 정부라 출구전략 어려워"
한·미·일 공조 강조 바이든, 한일 관계 개입 여부 주목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가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김강원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1.08.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일본 측의 거센 반발로 한일 관계가 더욱 냉랭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피고 자격인 위안부 판결 문제까지 다시 부각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은 좀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1억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는 2016년 1월 사건이 정식 재판으로 회부된 뒤 5년 만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장 일본 정부는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위안부 판결에 대해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며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아울러 소송 기각을 요구하며 한국 정부에 시정을 촉구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 역시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국제법 위반"이라며 "매우 유감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국가로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측의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으며, 항소할 생각은 없다는 뜻도 전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재판에 불참했다. 주권 면제란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해결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국가간 약속을 이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일본 외무성이 8일 한국 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판결과 관련해 남관표 주일 한국 대사(가운데)를 초치해 항의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남 대사가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외무성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마이니치신문 홈페이지 캡쳐)2021.01.08.

하지만 한국 재판부는 일본의 주권면제 주장에 대해 "반인도적 행위는 국가 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부는 판결 이후 6시간 만에 대변인 논평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간 '국내·외에서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 접근이 결여돼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에는 외교부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등 절차와 내용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판결에 따른 외교적 파장을 우려해 '공식 합의'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한일 관계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합의를 파기하지 않았지만 피해자 중심주의에 근거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정부는 논평에 "이번 판결이 외교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일 양국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담았다.

문제는 소송 대상이 민간 기업인 강제징용 소송과 달리 이번엔 일본 정부라는 점에서 여전히 갈등 해소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일본 정부가 재판 결과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데다 사법부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책임이 있다'고 직접 명시하고 있어 우회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기금을 만들면 풀 수 없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위안부 문제는 기금 자체를 거부하고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인 만큼 출구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며 "한일 간에 입장이 강경하고,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폭발성이 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강제징용 소송과 같이 공시 송달, 매각 명령 등을 거치겠지만 일본은 주권 면제를 주장하고 있어서 항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고,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몇 번의 해법을 제시했지만 일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을 경우 판결은 1심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 내 일본 정부의 자산이 매각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고의 법률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 집행과 자산 매각 문제에 대해선 별도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하며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눈사람이 놓여져 있다. 2021.01.08. myjs@newsis.com

특히 한일 관계가 더욱 꼬이면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에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한일 관계 개선을 적극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은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성사시키는데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7월 도쿄올림픽 개최에 적극 협력하면서 강제동원 문제를 임시 봉합하는 방안을 구상해 왔지만 위안부 판결이 불거지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물밑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타결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폭탄이 터지면서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장 힘들고 곤혹스러운 것은 정부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외교 리더들은 한국이 다시 역사 문제를 제기해 동맹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반일 정서에 편승해서 가는 것은 실익이 없다. 미국이 우선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미국이 개입한다면 어떤 식으로 개입할지에 대해서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일 정부는 이날 양국 대사 교체를 공식 발표했다. 외교부는 주일본대사에 강창일 전 의원을 임명했고, 일본 정부 역시 아이보시 고이치 주이스라엘 대사를 신임 주한대사로 발령했다. 양 대사는 1월 중에 현지에 부임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lg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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