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통과에 "'중대재해=기업범죄' 확인..반쪽짜리 법 아쉬워"

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2021. 1. 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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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안, 8일 국회 본회의 통과
5인 미만 사업장 처벌대상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총 3년 유예
발주처·공무원 등은 처벌대상서 빠져
시민사회단체들 규탄 "또다른 편법으로 법의 그물 빠져나갈 것"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된 후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산업재해 희생자 유가족들은 "'중대재해는 기업이 법을 위반한 범죄'라는 사회적 확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통과된 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빠졌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아 총 3년의 유예 기간을 둔다.

아울러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담당이사로 규정했다. 대표이사 등이 처벌을 피할 수 있어 노동계가 지적했던 대목이다. 발주처와 공무원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정한 조건에서는 중대재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법을 적용하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 도입도 불발됐다. 중대재해법 시행 시기는 공포 뒤 1년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법 제정 자체는 반기면서도 제정안이 노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법'에 그쳤다고 규탄했다.

단체들은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을 유예한 것 등을 두고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대다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발주처와 공무원, 조직적인 일터 괴롭힘 등이 처벌 대상에서 빠진 것 등도 비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생명과 안전을 우선 가치로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각 부처는 적용 대상을 줄이고, 처벌을 낮추기에 급급했다. 국회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법안의 핵심적인 취지를 훼손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정된 법이 실제 처벌로 이어지고, 재발 방지와 사전 예방으로 현실화될 때 법의 목적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제정된 법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히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또 다른 편법과 꼼수로 중대재해를 유발한 자들이 법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개 가짜 50인 미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며 "공무원, 발주처 처벌조항도 빠져 중대재해 발생 비중이 높은 건설 현장과 중공업 현장의 죽음의 행렬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법이며 5인 미만 노동자 살인 방조법"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거대 양당은 한국노총과 노동시민단체,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외침을 끝내 외면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여야 합의를 볼모로 중소 사업장 노동자를 희생시켰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법제정 요구가 나온 지 15년 만에 만들어진 중대재해법은 산재·시민재난참사가 기업이 안전·보건 책임을 다하지 않아 일어난 범죄라는 점을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명확하게 공표한다"고 평가했다. △경영책임자 처벌 △형사처벌 하한형 규정 △시민재해를 법적용 대상에 포함,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을 규정한 것은 의미있다고 봤다.

다만,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내용이 다수라 법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현재도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만 적용돼 노동 조건에서 수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며 "국회는 헌법상 보장된 가장 기본권인 생명권마저 차별하고 있다"고 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을 논의할수록 후퇴한다고 욕 먹던 여야가 급기야 40%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배제시킨다는 망발을 합의라고 발표했다"며 "평소 중대재해를 막기 어려워 처벌법까지 만들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모르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등 산재·중대시민재해 피해자 유가족들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29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왔다.

김미숙씨는 중대재해법 통과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모두 함께 노력한 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성과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법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법원에서 법대로 제대로 판결하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관씨는 "많이 부족하고 아쉽지만,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는 역사적이며 매우 뜻깊은 날"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추락해 숨진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죽음마저 차별하는 법이 되어 너무 개탄스럽다"며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지만, 작은 불씨가 희망이 될 수 있고 이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이상진 집행위원장은 "70%가 넘는 국민들이 이 법을 지지해주셨다. 오늘 법제정의 가장 큰 성과는 산재가 기업의 범죄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인정했다는 것"이라면서도 "세부적인 결과에는 아쉬움이 크다. 오랜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이 이제 죽음에서마저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에 △산재사망·시민재해 포함 △직업병·조직적 일터 괴롭힘 포함 △경영 책임자 처벌 △하한형이 있는 형사처벌 △원청·발주처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재난사고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 △인과관계 추정 도입 등을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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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thewhit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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