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대통령을 거스른 하극상, 秋가 '믿는 구석'은 뭘까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 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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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궁중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있다. 청와대 구중심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일차적인 호기심을 만족시켜준다. 또한 권력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나라 일이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핵심을 꿰뚫는 스토리는 있는 법이다. 권부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물고 물리는 파워 스트러글을 알면 나머지 현상은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이제 1년 남은 문재인 정권, 흔히 하산(下山) 길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하는 문재인 정권, 그 청와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것을 이해해야만 나라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장면이 추미애 법무장관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조선일보는 어제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사의 표명 추미애, 실제론 경질 당했다’. 이건 무슨 뜻일까. 그렇다. 지난달 발표됐던 것처럼 추 장관이 웃으면서 제 발로 걸어 나가는 ‘자진 사퇴’였던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사실상 해임 명령을 내린 것이요, 경질된 것이다, 하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기사의 출발은 법조계에 떠도는 소문에서 시작됐다. 추 장관이 아직도 청와대에 사직서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다.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이 추 장관의 사의 표명을 공식 발표한 것이 지난달 16일이고, 다음 주면 그로부터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청와대에 사직서를 보내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정상적인 장관처럼 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 때는 사의 발표 당일 바로 사표가 수리되고 곧바로 차관 대행 체제로 전환됐는데 그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2019년10월14일 오후2시, 그러니까 법무부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오후 조국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김오수 차관이 대행을 맡은 것이다. 그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동영상을 남기고 자리에서 그날부로 내려왔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후임자인 박범계 내정자가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인데도 아직 사직서조차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추 장관이 사의를 밝힌 게 맞지만 사직서 제출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난달 16일 추 장관과 문 대통령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날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재가받기 위해 청와대로 들어가 문 대통령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개각 등 인적 개편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는데, 추 장관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경질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추 장관은 그제야 문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성격 상 말을 직설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뜻은 분명하게 전달하되 말투는 부드럽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사 교체 때 핵심 관건은 ‘다음 자리’를 어디로 해주느냐 이 문제다. 물론 추정이긴 하지만, 그날 문 대통령이 물러나 달라고 요구했을 때 추 장관은 ‘다음 자리’에 대한 약속을 들으려 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후보로 자신을 지지해달라든지, 아니면 다음 총리로 지명해달라든지, 하는 요구를 했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난색을 표명했을 수 있다.

이런 협상이 결렬됐을 것으로 보는 정황 증거는 그날 사의를 표명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얘기가 끝난 뒤 원래는 추 장관이 직접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에 들러 본인의 거취를 직접 밝히는 것으로 정리가 됐었다고 한다. ’100%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만들려고 했던 셈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마치 찬바람을 일으키듯 휑하니 그냥 청와대를 나가버렸다. 대통령의 요구에 불복이나 항명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는 조금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됐는데, 결국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이 나서서 이렇게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의 사의 표명과 거취 표명을 높이 평가했다.” 이 말을 듣고 아마 실소를 금치 못했을 시청자도 계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의 사의 표명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인데, 그 행간을 읽어보면, 앞으로 다른 소리 못하게 추 장관 경질을 못 박아 버린 것이었다. “높이 평가했다”는 것은 “앞으로 딴 소리 말라”는 입막음이었던 것이다.

윤석열 총장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대통령의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마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자, 추 장관은 자신이 문 대통령을 좀 아는데 비선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그럴 분이 아니라고 했었다. 이것은 추후에 청와대가 윤 총장의 임기 완성을 확인해주지 못하도록 추 장관 나름대로 쐐기를 박아 놓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청와대가 그걸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추 장관의 입에 족쇄를 채운 것이다.

추 장관이 자진 사퇴할 뜻이 없었다고 봐야 하는 정황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12월1일 정세균 총리가 추 장관을 독대했을 때도 거취 결단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동반사퇴 혹은 ‘선(先) 윤 후(後) 추’ 같은 얘기도 나왔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정 총리의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을 만난 16일에도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권력기관 개혁 3법’ 브리핑을 열고 “검찰 개혁 소명을 환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발표했었다. 몇 시간 뒤 사의 표명을 할 사람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지난 달 공수처장 임명을 미루도록 한 사람도 추 장관이었다.

추 장관의 사의 표명에서 오늘까지 23일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법원은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처분의 집행을 정지시키는 판결을 내렸고, 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이때 문 대통령은 누구를 원망했을까. 정직 징계를 무효화시킨 판사를 원망했을까.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럴 때 권력자의 속성은 자기의 직속 부하인 추미애 장관을 원망하게 된다. 결국은 추 장관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해서 대통령이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이런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 ‘추미애 사표’ 미스터리…추(秋) 장관 당장 문책(問責) 해임해야”.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원칙적으로 사표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해임하면 그만이다. 문 대통령이 후임에 박범계 의원을 지명하면서 추 장관은 경질된 것이다. 그런데도 추 장관이 버틴다는 얘기가 나돌고, 문 대통령이 이런 하극상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 신문은 추 장관의 행동을 대통령에 대한 ‘하극상’으로 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 대해 “내 명을 거역했다”는 식으로 왕조 시대 표현법을 써서 구설수에 오르더니 정작 본인도 대통령의 명을 거역하는 ‘하극상’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추 장관은 마치 계속 장관직을 유지할 것처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새해 검찰 인사를 적극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박범계 내정자가 낙마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정권 초기였어도 추 장관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 아닐 것이다. 문 정권도 이제 하산 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레임덕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제 리얼미터 정기 조사에서 보듯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처음으로 60%를 넘어서 61.2%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누구든 최대한 버티거나 제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추 장관은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것일까. 추 장관이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 추 장관은 문 대통령이나 정권 핵심들의 어떤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일까. 추 장관은 강성 친문 진영, 흔히 ‘문빠’라고 부르는 진영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윤석열 총장과 정면 승부를 펼쳐온 추 장관에게 강성 친문들의 지지가 상당하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추 장관이 믿는 구석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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