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의 아버지' 나린더 싱 카파니 향년 94세로 별세

이수훈 인턴기자 2021. 1. 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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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미국 물리학자 나린더 싱 카파니 박사는 수천 개의 얇은 유리 섬유를 엮어서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954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광섬유의 탄생이었다. 국제시크교재단 제공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초고속 인터넷과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레이저 수술에 활용되는 광섬유를 처음 개발한 인도계 미국 물리학자이자 기업인 나린더 싱 카파니 박사가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즈는 7일 "광섬유의 아버지로 불리던 카파니가 지난달 3일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서 숨졌다"며 전했다.

카파니는 1926년 인도 북서부 펀자브주에서 태어나 학생 시절을 히말라야 산기슭에 위치한 데라둔시에서 보냈다. 카파니가 광섬유 개발에 뛰어든 계기는 고등학교 과학 교사의 "빛은 직선으로만 움직인다"는 설명이었다. 박스형 카메라를 갖고 놀면서 수 년을 보내며 빛이 렌즈와 프리즘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카파니는 교사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빛을 구부리는 방법을 알아내겠다고 다짐했다고 고백해 왔다.

카파니는 인도 아그라대를 졸업하고 1952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자신만 그런 생각을 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십년간 유럽 전역의 과학자들이 유리 섬유를 통해 빛을 꺾어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해 온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기술적 난제들이 빛을 꺾으려는 과학자들의 도전을 막고 있었다.

당초 카파니는 학자가 되기보단 기술을 배워 인도에서 회사를 차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광학회사에서 인턴십을 하던 중 만난 광학계 저명한 학자였던 해럴드 홉킨스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와 연구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홉킨스 교수의 발상을 카파니가 기술을 적용해 현실로 가져왔다. 두 과학자는 수천 개의 얇은 유리섬유를 묶은 다음 엮은 선으로 끝에서 끝까지 이으면 빛을 광섬유를 타고 보낼 수 있다고 195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전달하는 광섬유가 탄생한 것이다.

광섬유는 정보를 빛으로 변환해 목적지까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된다. 유리섬유 내부와 외부의 굴절률을 다르게 해 빛을 가두는 원리다. 광섬유 속에서 빛은 내부로만 모두 반사되는 전반사를 일으키며 앞으로 진행해 나간다.  광속의 3분의 2에 가까운 속도로 정보를 보낼 수 있어 실시간에 가까운 대륙간 텔레비전 방송이나 인터넷 통신, 정밀한 시술이 필요한 의학 레이저를 가능하게 한 발명품이다.

카피니는 1995년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10년간 56개의 논문을 썼다. 이는 당시 광섬유 관련 연구의 30%를 차지한다. 광섬유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도 카파니다. 카파니는 1960년 미국 대중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투고한 기사에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카파니는 ‘광섬유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만 홉킨스 교수와는 1954년 논문을 발표한 직후 갈라섰다. 홉킨스 교수는 카파니가 공헌을 과장했다고 비난했고, 카파니는 교수의 이론을 현실로 만든 것은 자신이라고 반박했다.

카파니는 회사를 차리려 했던 사업가 기질을 그대로 이어가 광섬유를 상업화하는데도 열중했다. 카파니는 1957년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로 취직했지만 3년 후 캘리포니아로 옮겨가 ‘옵틱스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차렸다. 1967년 저조한 실적과 예산 문제를 이유로 회사를 떠났지만 6년 뒤인 1973년 광섬유 장비를 제작하는 ‘캡트론’을, 1999년에는 아들과 함께 ‘K2 옵트로닉스’를 설립하는 등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을 지속했다.

일각에서는 카파니가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은 '빛의 정복자들'이라는 주제로 광통신을 위한 섬유 내 빛 전달 연구를 수행한 홍콩계 광학자 찰스 카오에게 돌아갔다. 당시 카오는 전하결합소자(CCD)를 개발한 연구자들과 함께 상을 받았는데 광섬유 분야로는 단독 수상했다. 카오는 불순물을 제거해 높은 순도의 유리로 1970년 최초로 실용적인 광섬유를 제작한 바 있다. 카오의 연구로 1960년대 20m밖에 전달되지 못했던 빛의 전달거리는 100km까지 확장됐다.

당시 카파니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상은 내가 광섬유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카오는 나보다 수년 뒤 연구를 시작했다"며 "수상자를 결정하는것은 스웨덴 왕립과학원으로 어떤 기준이을 썼든 그들은 결정을 내렸다”이라고 말했다. 카파니는 1999년 미국 경제매체 '포춘'에서 20세기를 바꾼 7명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카파니는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발전한 종교인 시크교에서 쓰는 중간이름인 '싱'에서 볼 수 있든 시크교도다. 카파니는 생애 내내 종교를 자랑스러워 하며 인도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터번 차림을 지켜 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크교 예술 컬렉션 중 하나를 모아 미국 전역 박물관에 전시를 후원하기도 했다. 그는 광섬유를 시연할 때마다 "인도 광학 끈 트릭"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수훈 인턴기자 so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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