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칙 없이 타협하다 껍데기만 남은 중대재해법

한겨레 2021. 1. 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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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취지를 크게 훼손한 정부안을 바로잡으라는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 시민사회의 요구에 두 당은 정부안보다 외려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답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부족하지만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계속 보완·개선해 가길 바란다"고 했고, 김태년 원내대표도 "중대재해법 제정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끝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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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안에 대해 발언하려다 제지된 뒤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국회 공동취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한 내용 그대로다. 법 취지를 크게 훼손한 정부안을 바로잡으라는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 시민사회의 요구에 두 당은 정부안보다 외려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답을 했다. ‘생명 존중’과 ‘노동 존중’을 천명해온 정부와 여당의 잘못이 누구보다 크다. 방향성을 잃은 채 원칙 없는 타협으로 ‘누더기 법’을 만든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지체 없이 법 개정에 나서는 것만이 엄중한 시대적 요구 앞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여야가 의견을 고루 들어 조정하고 만장일치로 합의한 내용이다 보니 노동계와 경제계 양쪽의 반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혹한에 한달 동안 곡기 끊고 한뎃잠 자며 버텨온 이들과 따뜻한 실내에서 입장문 몇번 발표한 이들의 요구를 나란히 놓고, ‘목숨’과 ‘비용’을 등가로 교환한 걸 ‘합의’라고 할 수 있는가. 산재 사망자의 60%가 발생하는 5~49명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3년 유예하고 20%가 발생하는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산재 사망률(노동자 1만명당 0.46명)을 영국(0.04명) 수준, 최소한 일본(0.16명) 수준까지는 낮출 수 있다고 보는가.

산재 사망률이 낮은 나라라고 해서 영세·중소 사업장의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전설비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 원청에 연대책임을 강하게 물리면서 동시에 정부가 정책과 재정으로 강력히 뒷받침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독 노동 관련 법과 정책에 대해서는 실효성을 담보할 핵심은 다 빼놓고 이름과 껍데기만 남겨온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우리는 계속 지켜봐왔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때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도 그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더는 국회 의석수를 탓할 수도 없다. 이젠 생명과 노동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의지 부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대표는 이날 “부족하지만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계속 보완·개선해 가길 바란다”고 했고, 김태년 원내대표도 “중대재해법 제정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끝은 아니다”라고 했다. 급한 김에 둘러댄 말이 아니라면,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법 개정 방향과 일정도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산재 유가족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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