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피해 첫 승소..韓법원 "日정부 배상하라"
원고 12명에 1억씩 배상 판결
日스가 "결코 수용할 수 없어"
한·일 외교관계 더 급랭 예고
◆ 위안부 피해 日에 첫 승소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증거와 각종 자료, 변론 취지를 종합해 볼 때 피고의 불법 행위가 인정된다"면서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며 피해를 배상받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위자료 액수는 원고들이 청구한 1인당 1억원 이상이 타당하다고 판단돼 청구를 모두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안에 대해 재판할 권리가 한국 법원에 있다고 인정했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해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 국제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양국이 1965년 맺은 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날 법원의 판결로 한일 관계는 꽁꽁 얼어붙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일본이 징용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비친 데 이어 앞으로도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될 전망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기자단과 만나 한국 법원 판결에 대해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공식 발령을 받은 강창일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지만 이런 문제까지 포함해서 정치적으로 풀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예경 기자 / 홍혜진 기자]
법원이 다른 국가 상대로
재판 못한다는 국제 관행
반인륜적 위안부 문제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
'배상금 집행'까진 산넘어 산
일본국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은 한국 법원이 주권면제(국가면제)에 예외를 적용한 첫 사례다. 일본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나라를 소송 당사자로 할 수 없다는 주권면제를 내세워 재판에 불응했으나 법원은 중대한 인권 침해가 일어난 사안으로 예외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도 한국에 있으며, 원고들 청구권이 역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조정을 신청한 2016년만 해도 원고로 이름을 올린 위안부 피해자들은 12명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1심 선고까지 생존한 피해자는 5명에 불과했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안소를 운영하며 미성년이거나 갓 성년이 된 피해자들은 조직적인 통제하에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일본 군인들의 성적 행위 대상이 됐다"며 "일본제국이 비준한 조약과 국제 법규를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정에서 처벌하기로 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한국 법원이 심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일본의 불법행위가 한반도 내에서 이뤄졌고, 원고들이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현지 증거조사 등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며, 국제재판관할권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병존 가능한 점 등에 비춰 보면 대한민국의 실질적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대한민국 법원 관할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역시 인정됐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회의의 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일본의 태도를 봤을 때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 배상금 지급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일본이 배상에 나서지 않으면 법원은 일본의 국내 재산을 강제 매각해 배상금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응답하지 않으면 공시 송달을 통해 절차가 진행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국내에 매각 가능한 일본 재산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주권 면제 예외에 대한 논쟁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페리니 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은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이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독일로 끌려가 강제노역한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주권면제 예외라고 판단했다. 이에 독일은 2008년 이탈리아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그리스도 이 사건에 참여하며 '이탈리아·그리스 대 독일'의 국제 소송이 시작됐다. 그러나 결국 이 재판은 독일 승소로 끝났다. ICJ는 2012년 재판관 15명이 '12대3' 의견으로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에 제기된 민사소송을 허용한 것은 국가면제 특권을 존중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 국제법 전문가는 "다만 ICJ는 유엔 최고 사법기구로 재판관 15명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지지를 받아 선출되므로 국제 관계 안정성이나 국가주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 김강원 변호사는 판결이 선고된 뒤 "스스로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일본이 아직까지 이렇게 반인도적이고 반문명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을 선고한 김정곤 부장판사는 1972년 포항 출신이며 사법연수원을 28기로 수료했다. 2002년 울산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2018년 2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보임됐다.
■ <용어 설명>
▷주권면제 :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 모든 국가의 주권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따라 재판을 통해 내정간섭을 막는다는 취지.
[정희영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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