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꿈꾸던 세상은 이제 없다, 패권 전쟁만이 남았을 뿐

이향휘 2021. 1. 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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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 존 J 미어샤이머 지음 / 이춘근 옮김

인간은 선하지 않다. 권력 욕구는 본능이다. 국제사회는 무정부 상태이며 모든 나라는 힘을 가지려고 한다. 강대국은 압도적 1등이 되기 위해 끝까지 패권국을 꿈꾼다. 이 모든 메마른 문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자다.

여기 그냥 현실주의자도 아니고 '공격적 현실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국제정치학자가 있다. 세계 1등 국가와 2등 국가는 경쟁과 갈등을 겪으며 필연적으로 패권 전쟁이라는 비극까지 치닫는다고 주장하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74)다.

흔히 '매파'로도 분류되는 그는 2001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통해 국제정치의 냉혹한 측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는 찬사와 함께 국제관계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한꺼번에 받았다. 하지만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현실이다.

이번에 국내 번역 출간된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원제 The Great Delusion)은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후속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후 지난 30년간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은 처절한 실패기였다고 단언한다.

옛 소련 몰락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적 패권'이라고 불리는 심오하고 야심찬 외교 정책을 채택했다. 당시 발표됐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논문 '역사적 종언'이 큰 영향을 끼쳤다. 후쿠야마가 보기에 자유주의는 20세기 전반에는 파시즘을, 20세기 후반에는 공산주의를 파괴했으며 자유주의에 대항할 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낙관했다.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아담을 빚었듯 미국은 세상을 자신의 모습대로 다시 창조하고자 했다. 독재와 인권 유린에 신음하는 수많은 국가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모시켜 핵 확산과 테러리즘을 막고 세계를 더욱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순진했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많은 전쟁과 군사 개입을 시도했지만 어느 한곳에서도 자유주의, 인권, 민주주의는 신장되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포용 정책도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중국이 통합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중국의 민주화를 독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을 도왔다.

저자는 "1989년 이후 미국은 매 3년 중 2년을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며, 총 7개의 전쟁에 빠져들었다"며 "중동에서의 실패는 지금도 누적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도 진행 중"이라고 일갈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자 미국 학술원 회원인 그는 자유주의가 얼마나 이상적인지, 민족주의 앞에서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개념적으로 또 이념적으로 서술했다.

그가 보기에 자유주의는 오직 민족국가라는 범주 내에서 작동할 수 있을 뿐이며 민족주의와 충돌하면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 국제체제는 위계적 구조가 아니라 무정부적 구조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적 태도나 인도의 힌두 극단주의 부상이 좋은 예다.

자유주의 시조는 영국의 존 로크(1632~1704)다. 로크는 "모든 권력과 사법권은 상호적이며,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할 수 없는 평등의 상태"라며 "정치권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자연상태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로크의 사상은 개인이 사회보다 우선하며, 자연상태로서 개인은 자유로운 행위자며 개인은 대체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계발한다고 보는 자유주의로 발전했다. 코즈모폴리턴인 워싱턴 엘리트 외교관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자다. 미국은 20세기 초반부터 존 롤스를 대부로 두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몰입한다. 저자는 "미국 민주당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분명히 진보적 자유주의며, 민주당은 워싱턴의 주요 권력을 장악할 때마다 이 같은 이념에 따라 행동했다"고 지적한다.

오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하는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당선인은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부활시킬까.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로 백악관에 입성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버리고 현실주의 정책으로 돌아섰지만 결국 치욕스러운 퇴장을 앞두고 있다. 동맹을 무시하며 막대한 혼란을 초래한 결과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도 중국을 봉쇄하는 미국의 외교 전략은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중국의 부상과 한미동맹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 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한국에는 재앙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 국민 거의 모두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휘두를 것이며, 반면 한국은 그에 도전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꼬집는다. 이어 "동아시아에 강대국 국제정치가 다시 돌아왔으며, 한국과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은 상당 기간 더욱 굳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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