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에서] 阿 대륙에 새겨진 김구의 문화국가 비전

김인엽 기자 2021. 1. 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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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주콩고대사
분열 극심한 민주콩고, 韓에 도움 요청
코이카 무상 원조로 국립박물관 설립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
중앙홀 각인된 백범 선생 말씀대로
문화유산 모아 국가정체성 확립 나서
김기주 주콩고대사
[서울경제]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우리나라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언제 되새겨 읽어도 울림이 있는 국가 건설의 비전이다. 아프리카에 백범의 이 말씀이 새겨진 곳이 있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수도 킨샤사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중앙홀이다. 이 박물관은 우리 정부에서 진행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 무상 원조 사업으로 지어졌다.

민주콩고에 국립박물관이 세워진 배경은 특별하다. 민주콩고는 80여 년이 넘는 식민 지배 역사의 아픔을 겪고 지난 1960년에 독립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내전과 국제전을 치르는 등 국가 통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동부 지역에서는 반군이 준동하는 등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민주콩고는 면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지만 200여 개 이상의 종족이 함께 살고 있다. 공용어가 네 개나 되지만 방언 역시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많다. 세계 최대의 코발트 생산국이자 광물 자원 부국으로서 막대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국가이나 내부의 불안정이 언제나 잠재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나라를 하나로 묶어 발전시키려면 문화와 역사 정체성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민주콩고 정부는 국립박물관에 각 지역의 문화유산을 한데 모아 국가 정체성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콩고 정부는 우리 정부에 국립박물관을 짓는 사업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화답해 2019년 11월에 박물관이 개관하게 됐다. 이 박물관에는 민주콩고 각지의 유물 1만 2,000여 점이 수장(收藏)돼 있다. 이 중 국보급 문화재 430여 점이 전시 중이다.

이 박물관이 세워지게 된 의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 사업은 코이카가 아프리카에서 실시한 무상 원조 중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지원액의 규모는 약 2,100만 달러(약 230억 원)에 달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중국·러시아 등이 민주콩고와 아프리카에 대해 발 빠른 접근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아프리카의 잠재력과 꾸준한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아프리카에 대한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둘째, 우리 정부가 코이카를 통해 문화개발협력(ODA)의 일환으로 처음 진행한 박물관 구축 사업이다. 우리 정부가 1991년 코이카를 창설해 무상 원조 사업을 전문화한 지 벌써 한 세대가 돼간다. 개발도상국과의 개발 협력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칙의 하나는 주인 의식이다. 개도국이 주인 의식을 키워나가는 데는 국가 정체성 확립이 필수적이다. 국가 정체성에는 국민의 문화 정체성이 선결 요건이다. 따라서 이 박물관 사업은 우리 개발 협력 모델의 외연을 넓혀 ‘K문화 개발 협력’의 장르를 더욱 발전시켰다는 데도 의의를 둘 수 있다.

셋째,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소프트 파워(연성 국력) 자산을 키워나갔다는 것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군사력·경제력으로 대표되는 하드 파워뿐만 아니라 문화력을 포함한 소프트 파워는 선진국의 국력을 구성하는 중심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K문화 붐이 불고 있듯이 우리의 소프트 파워 저변 역시 넓어지고 있다. 문화를 디딤돌로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을 키워나가는 데 중견 선진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실린 ‘나의 소원’을 통해 1947년에 우리 젊은 사람들이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뜨고 힘을 쓰면 30년이 못 돼 괄목상대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내다봤다. 콩고국립박물관을 찾을 때마다 김구 선생의 비전과 혜안에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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