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작은 성취의 경험을 찾아서 / 정대건

한겨레 2021. 1. 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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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에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유행하고 피시(PC)방이 성행했는데 나는 10대 시절에 피시방을 드나든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칠전팔기로 성취해내는 사람들을 정말로 경외한다.

나는 위대한 선생님은 되지 못한다며 그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새로운 수업의 커리큘럼을 작성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작은 성취의 경험을 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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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정대건 ㅣ 소설가·영화감독

2000년대 초반에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유행하고 피시(PC)방이 성행했는데 나는 10대 시절에 피시방을 드나든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기만 하면 늘 지는 게임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그 이후로 지금껏 나는 피시 게임에는 전혀 취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매일 지기만 해서 피시 게임에 흥미를 잃고 멀어졌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오락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그것을 작은 성취의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세상의 긍정적 피드백, 인정, 칭찬, 당근, 보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어릴 때 나는 뭔가를 배우는 데 좀처럼 끈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피아노도, 수영도, 태권도도 한 번 다니면 꾸준히 다녔던 누나와는 달리 나는 금세 흥미를 잃고 마는 ‘중도 포기자’였다. 나는 작은 성취를 맛보거나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재미를 못 느꼈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칠전팔기로 성취해내는 사람들을 정말로 경외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그러한 작은 성취의 경험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다. 내가 잘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건지, 래퍼 이센스의 ‘독’ 가사처럼 “위로가 될 만한 일들을 미친놈같이 뒤지고” 다녔다. “너는 뭐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주변에서 내게 그런 말을 해줄 선배나 선생님을 찾지 못했다. 대학 교정을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방향을 잃고는 했는데, 나는 창작을 하고 싶었으나 학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탓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과 영화에 파묻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작가나 감독들의 강연을 멀리까지 찾아다니기도 했다. 대부분의 특강 자리에서는 내가 이미 책이나 인터뷰에서 읽은 이야기를 또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시행착오 끝에 얻은 방법론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라도 얻고 자극을 받고 싶었다.

교직 이수를 하여 교생 실습을 다녀오기도 하고, 워크숍 강사로 청소년들을 만나거나 노인센터 강사로 어르신들을 만나는 등 그간 여러 교육 현장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수업을 할 때 눈을 빛내며 뭔가를 배워 가려는 열의가 있는 수강생을 가르치는 것은 수월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의욕이 없는 수강생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일이다. 위대한 선생님은 단순히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의욕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대한 선생님은 되지 못한다며 그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새로운 수업의 커리큘럼을 작성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작은 성취의 경험을 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몇 년 전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 선생님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글에 좋은 부분이 있어요. 계속 써보세요” 하고 한마디 해주셨다. 수강생을 북돋워주기 위한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관련된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경력도 없고, 주변에 아무런 붙들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의 그런 말이 2년, 3년이 걸려서라도 소설책을 완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새해에도 이런저런 수업을 통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것이다. 내가 그런 경험을 해보니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높은 강의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수업을 통해 수강생들이 작은 성취의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것이야말로 재미를 느끼고 꾸준히 하게 만드는 힘이니까. 좋은 점을 발견하고 표현을 해주어야지. 그리고 나 또한 올해에도 끊임없이 내게 힘이 되어줄 말과 선생님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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