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 페이퍼' 입수해 최초 보도한 닐 시핸 기자 별세
[경향신문]
‘펜타곤 페이퍼’로 불리는 미 국방부 기밀문서를 입수해 통킹만 사건 조작 등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밝혀낸 닐 시핸 기자가 별세했다. 향년 84세.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은 시핸이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그의 집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 국방부 기밀 문서였던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년~1967년>(펜타곤 페이퍼)을 입수해 미 정부가 냉전 중 이권을 넓히기 위한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반전운동이 확산했으며, 미 정부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중지 소송에 재판부는 “정부는 표현(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시핸은 알고 지내던 취재원이자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한 국방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로부터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했다. 엘스버그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7000장 분량의 펜타곤 페이퍼 사본을 시핸에게 유출했다. 1971년 엘스버그는 시핸에게 “문서를 복사하지 말고 보거나 내용 메모 정도만 하라”고 요청하며 문서를 자신의 집에 보관했다. 하지만 시핸은 엘스버그가 휴가를 가 집을 비운 사이 문서를 훔쳐 복사했다. 몇 주 동안 워싱턴에 있는 호텔에 은둔하며 문서를 분석한 끝에 1971년 6월13일 뉴욕타임스에 펜타곤 페이퍼에 담긴 내용을 보도했다.
미 정부의 통킹만 사건 조작은 시핸이 펜타곤 페이퍼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 중 가장 화제가 된 내용이었다. 1964년 8월, 미 국방부는 “베트남 근처의 해상에서 미 군함이 북베트남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고, 이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통킹만 사건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일이었다. 펜타곤 페이퍼에는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케네디 대통령이 비밀리에 베트남 군사작전을 승인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시핸의 보도 후 리처드 닉슨 정부는 “국방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며 펜타곤 페이퍼 관련 보도 중지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첫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나간지 17일 후,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억압할 수 없다”며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시핸은 관련 보도를 이어 갔고, 1988년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숨진 군인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 <밝은 거짓말: 베트남의 존 폴 반과 아메리카>를 펴내 이듬해 퓰리쳐상을 받았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 뒤 연락이 끊겼던 시핸과 엘스버그는 훗날 뉴욕 맨해튼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뒤통수’를 맞았던 엘스버그는 시핸에게 “나처럼 당신도 문서를 훔쳤네”라고 말했다. 시핸은 “나는 그것을 훔치지 않았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국가에 (전쟁 당시) 자식들의 피를 지불했던 미국 국민에게 펜타곤 페이퍼로 보상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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