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적이면서 섬뜩한 '야만의 풍경' [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1. 1. 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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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엘멧
피오나 모즐리 지음·이진 옮김
문학동네 | 304쪽 | 1만5000원

아름답고도 불길하고, 동화적이면서도 섬뜩한 이야기 한 편이 새해 독자들에게 도착했다. 영국 작가 피오나 모즐리의 장편소설 <엘멧>이다. 소설은 모즐리가 29세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2017년 정식 출간도 되기 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됐다. 폴 오스터, 조지 손더스, 앨리 스미스 등 쟁쟁한 거장들 사이에서 낯선 그의 이름은 “골리앗들 사이에 등장한 다윗”이란 영국 문학계의 평과 함께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연기는 나의 뒤에 머물고 햇살은 숨을 죽인다. (…) 여전히 잉걸불의 냄새가 난다. 구불구불한 폐허의 그을린 윤곽.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남자들, 그리고 한 소녀. 그 분노. 그 공포. 그 결연함. 그다음엔 숲을 관통하던 파멸의 전율. 그리고 널름거리는 불길. 그 뜨겁고 건조한 불꽃. 살갗에 피를 묻힌 누나와 버려진 땅.”

피오나 모즐리의 데뷔작 <엘멧>은 2017년 정식 출간도 되기 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서점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이 신예 작가는 통근길 틈틈이 이 소설을 썼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춥고 황야가 많은 요크셔 지역이 배경이 됐다. ⓒHeidi Stoner
문명과 단절된 한 가족의 숲속 보금자리는 유토피아다
어느 날 이들에게 악명 높은 ‘지주’가 찾아온다
이제 소유권과 착취라는 자본주의 폭력에 맞선다

소설은 정처 없이 철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열네 살 소년, 대니얼로부터 시작된다. 첫 장부터 강렬하게 독자를 잡아끄는 문장. 소년의 발밑에는 최후의 독립 켈트왕국 ‘엘멧’의 잔해가 있다. 사라진 누나를 찾기 위한 소년의 고된 여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소설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소년의 가족은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의 숲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다. 남매의 아버지 존이 직접 숲속에 집을 지었고, 근처 잡목림에서 사냥하고 채집한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가족이 처음부터 숲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남매도 한때 학교에 다녔고, 할머니와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나 가끔씩 집에 불쑥 나타나 수일을 잠만 자고 사라지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남매를 돌봐주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난다. 누나 캐시는 또래 남자아이들로부터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하다 그들을 때려눕히지만, 교사조차 ‘불우 가정’의 아이 캐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이 있은 후 존은 아이들과 숲속으로 향한다. 거구에다 초인적 힘으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아버지 존이 이따금 마을로 내려가 마치 투견처럼 맨주먹 내기 싸움을 해서 번 약간의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한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근육과 맨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세상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지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서 키웠다. 아빠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 두려워하는 모든 것에 우리를 묶어두었음을 이제 나는 안다.”

현대 문명과 어긋난 생활 방식이지만, 숲속 보금자리는 이들에겐 작은 유토피아다. 사람들이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남매에겐 따뜻한 아빠일 뿐이고, 그를 닮아 강인한 캐시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여자아이답지 못한’ 특이한 아이지만 이들에겐 그저 ‘캐시’일 뿐이다. 섬세한 성격의 대니얼이 요리를 즐기고,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며 짧은 티셔츠를 입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폭력은 외부에서 왔다. 거칠지만 너그러운 숲에서 살던 이들에게 불청객이 찾아온다. 작가는 자연 속 이들의 단란하고 목가적인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이내 잔혹한 핏빛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광활한 땅을 소유한 악명 높은 지주, 프라이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프라이스는 일대의 권력자로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그가 소유한 주택의 세입자이거나 그의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이다. 프라이스는 대니얼 가족이 자신의 땅을 무단 점유해 집을 지었다며 찾아온다. 그리고 존에게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곳에서 당장 떠나거나, 과거처럼 자신을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해결사’로 일하거나. ‘살아 숨쉬는 땅을 종이 한 장에 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마을로 내려가 지주와 농장주들에게 시달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 결집한다. 파업과 집세 납부 거부로 이들은 한때 승기를 잡은 듯하지만, 이내 또 다른 위협과 폭력이 시작된다. 그렇게 숲속 밖 세상과 연결된 남매는 그 비정함과 점차 마주하게 된다. 캐시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결연한 분노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자연적인 힘과 자본주의적 권력 두 극단을 상징하는 인물의 대립을 통해 자본주의 소유권 개념과 착취의 문제, 더 나아가 진정한 ‘야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오래전 사라진 옛 왕국의 터 위에서 군림하는, 마치 현대 사회 속 중세 지주가 건설한 듯한 ‘자본의 왕국’을 비판적으로 그리지만 그렇다고 육체적·자연적 힘이 지배하는 과거를 무조건 옹호하진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시대를 초월한, 지주와 소작농 등이 등장하는 잔혹 동화 내지 우화로도 읽힌다는 점이다. 서점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통근길 틈틈이 휴대폰으로 소설을 썼다는 이 신예 작가는 여러 장르를 대담하게 넘나들며 인간 사회의 냉혹함과 부조리함을 흡인력 있는 전개로 펼쳐 보인다. 무정한 세계 속 한 가족의 비극을 그리지만, 서정과 폭력 사이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문장이 더 처연하게 빛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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