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美 의사당 난동과 '문빠 정치'

기자 2021. 1. 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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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팬덤 정치의 막장劇 보여줘

獨 나치의 의사당 방화와 대비

극단적인 진영정치의 폐해

‘양념’ 문빠가 이젠 與 안방 차지

野가 대선 승리 땐 美 사태 재연

文대통령이 결자해지 나서야

의회 민주주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6일 연방 의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태는 21세기 극단적 팬덤 정치의 막장극을 보여준다. 미 언론에 생생하게 생중계된 모습에서 ‘포퓰리스트 지도자’ 한 명이 200년 전통의 민주주의 유산을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미국도 이런데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 ‘문빠 정치’가 악성화(惡性化)될 경우 내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날 미 의회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어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인증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화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기 위해 백악관 앞에 모인 시위대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지지 연설에 나서 “대선 불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연설에 이어 시위대가 의회로 행진, 의사당을 점거했고 상·하원 의원들은 투표를 중단하고 긴급히 대피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세기 초 독일 나치의 독재 체제 기폭제가 된 의사당 방화 사건을 연상시킨다. 1933년 2월 독일 국회의사당이 정체 모를 방화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치는 독일 공산당의 계획적 범행으로 몰았다. 이를 빌미로 대통령 긴급명령을 공포해 공산주의자를 비롯해 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에게 탄압을 가했고 ‘수권법’이 통과되면서 나치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에 벌어진 미 의사당 난동 사태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의 기시감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만 해도 ‘촛불 혁명’이라는 진보와 중도층의 합작품에 힘을 실었다.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선언하면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을 국정 제1 목표로 내걸면서 극성 지지층인 ‘문빠’에 의존했고 이들은 문 대통령을 교주(敎主)처럼 떠받들었다. 20만∼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극성 문빠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문자 폭탄과 댓글로 괴롭힘을 가하고 다녔을 때 문 대통령은 “경쟁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으로 치부했다. 이들은 지난해 4·15 총선 경선 판도도 좌우해 금태섭 전 의원과 같이 비판적 인사는 탈락시켰고, 총선 압승에 기고만장했다. 이젠 더불어민주당의 안방을 차지해 당 대표, 장관은 물론 대통령마저도 함부로 반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돼 버렸다.

이낙연 대표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다가 이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이틀 만에 꼬리를 내린 것이 상징적이다. 한때는 “당의 에너지”라고 했던 이 대표도 이들의 덫에 빠져 버렸다. 이들에게 밉보였다간 대선 후보 경선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지난달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사퇴 권고를 받고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문 대통령이 ‘경질’하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가 이를 발표하며 쐐기를 박았다고 한다. 추 장관이 이렇게 대통령의 요구까지도 거절하면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뒤에 문빠의 지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 유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가자가 40만을 훌쩍 넘긴 것이 상징적이다.

야당이나 반대자에 대한 설득은 아예 포기하고 극성 지지층만 ‘국민’으로 보고 정치를 한다면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파괴 사태는 우리에게도 재연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만약 야당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국회 의석은 향후 2년간 여당의 압도적인 174석이 유지되는 만큼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문빠와 민주당은 사사건건 새 정권에 반대할 것이고, 대통령은 무엇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국정 마비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정권이 연장되든 교체되든 ‘책임 윤리’를 상실한 폭력적인 ‘빠 정치’는 정치적 해악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양념이 아니라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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