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이 무서운 이유는 완벽하기 때문.."미신의 프랜차이즈화한 것이 종교" [화제의 책]

홍진수 기자 2021. 1.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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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믿습니까? 믿습니다!
오후 지음
동아시아 | 384쪽 | 1만6000원

인간의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주선이 지구 밖 다른 행성을 탐사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잡아내는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신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연초면 토정비결을 보고 매일 ‘오늘의 운세’를 뒤적인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성격검사 MBTI가 유행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미신 따위는 일절 믿지 않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자문해보자. “빨간색 볼펜으로 내 이름을 써도 아무렇지 않은가.”

이 관문까지 통과했다면 지금 내 모습을 거울에 한번 비춰보자. 그리고 또 물어보자. “가슴에 손은 왜 얹고 있는가.” 진실한 대답은 뇌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나오기라도 하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미신에 빠져 있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미신과 함께 산다.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신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 이성이 밝아졌어도 미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믿습니까? 믿습니다!>의 저자 오후 작가는 과학교양서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를 쓴 ‘과학 스토리텔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가 쓴 이번 책은 미신의 비과학적인 면을 조목조목 짚어주며, 미신에 빠진 사람들을 조롱할 것 같다. 그러나 <믿습니까? 믿습니다!>는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책이 아니다. ‘과학과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 왜 우리는 아직도 미신을 믿는지, 도대체 이 비합리적인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흔히 미신이라고 하면 별자리, 사주팔자, 풍수지리, 관상, 신점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미신은 그 범주가 훨씬 넓다. 저자는 미신이라는 큰 틀에 정치, 역사, 철학, 종교 등 인류사를 관통하는 모든 주제를 끌어와 녹여낸다. 특히 종교는 “미신의 프랜차이즈화를 고심한 결과”라고 말하는데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문명을 일으킨 최대 공신인 ‘농경’도 미신이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농경을 “인류 최대의 실수”라고 했고,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농경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라고 표현했는데, 저자는 아예 “인류 최대의 미신”이라고 말한다.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탄수화물 덩어리만 섭취했기 때문에 늘 영양 불균형에 시달렸고, 인간 신체와는 맞지 않는 농사일 때문에 허리는 휘었으며 관절에 무리가 왔다. 저장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 생기자, 부족 간의 싸움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농경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1000년 이상이 걸렸다.

농경을 시작한 이후 인류는 수렵 채집 시절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인류는 농경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농경의 힘으로 문명을 이뤄냈다. 저자는 “믿음을 바탕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신념의 도약, 이런 행동들은 비록 수백 수천 번 실패할지언정, 가끔은 성공했고, 이는 역사의 한 단계를 뛰어넘는 선택이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미신은 경계해야 한다. 사소한 미신은 삶에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어떤 미신은 가끔은 삶 자체를,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한다. 최근 들어 퍼지고 있는 ‘백신에 대한 미신’이 그렇고, 종교에 대한 극단적인 믿음이 그렇다.

그러니 결국은 미신을 바라볼 때에도 항상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에 깔아놓아야 한다. 저자는 “미신이 무서운 이유는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하기 때문이다. 미신과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들은 단지 미신이 쌓아 올린 체계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똑똑한 두뇌는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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