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흰 종이가 그대로 눈이 되었다

기자 2021. 1. 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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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섬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북쪽의 마을과 산과 길을 뒤덮었다.

온통 하얀 눈이 쌓인 세상이 됐다.

털모자를 쓰고 단단히 옷을 챙겨 입은 다음 눈 세상으로 나온 두 어린이는 삽으로 눈 속에 굴을 만들기 시작한다.

두 어린이는 눈 치우기를 그만두고 눈 속에서 같이 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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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눈 / 박현민 글·그림 / 달그림

남쪽 섬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북쪽의 마을과 산과 길을 뒤덮었다. 온통 하얀 눈이 쌓인 세상이 됐다. 눈이 내리면 힘들고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 생기기 때문에 풍경을 즐기기 전부터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눈송이가 말 그대로 함박만 했는데 오래간만이어서인지 믿기지 않았다. 눈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고요하다. 그러나 곧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엄청난 눈이에요. 이렇게 많이 온 건 처음 봐요.” 박현민 작가의 그림책 ‘엄청난 눈’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제본선을 상단에 둬 위로 넘기게 돼 있다. 책을 펼치면 세로로 긴 프레임이 만들어져 눈이 내리는 모습을 나타내기 좋다. 두께가 2㎜도 넘는 표지의 한 부분을 울퉁불퉁한 집 모양으로 오려뒀다. 그 안쪽으로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눈에 파묻힌 어떤 집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공간의 깊이가 생긴다. 오린 부분이 직선이 아니어서 눈덩이의 질감이 살아난다. 눈처럼 비스듬히 내려오는 네 글자 제목 위로 하얀 눈발이 날린다. 희끗희끗 묻은 눈을 툭툭 털어주는 것처럼 손으로 만져본다. 광택이 없는 포근한 질감이다.

엄청난 눈이 내린 날의 이야기다. 털모자를 쓰고 단단히 옷을 챙겨 입은 다음 눈 세상으로 나온 두 어린이는 삽으로 눈 속에 굴을 만들기 시작한다. 삽으로 모자란 눈을 만난 어린이들은 제설차를 몰고 눈 속을 뚫고 올라간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린 것일까. 정방형의 작은 그림책이지만 크기의 상대성을 활용해 만들어낸 공간감이 대단하다. 장면을 거듭 넘길수록 폭설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가 없다.

두 어린이는 눈 치우기를 그만두고 눈 속에서 같이 놀기 시작한다. 여백은 형태가 되고 어린이들의 몸은 눈이 되고 어떤 하얀 색은 배경이며 어떤 하얀 색은 인물의 동작이 된다. 독자는 눈을 크게 뜨고 하얀 눈 속에서 하얗게 존재하는 숨겨진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산더미 같은 눈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신나게 파헤치는 기분으로 읽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노란 원뿔이 나타난다. 이것은 또 무엇일까?

박 작가는 ‘공간과 스케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그림책을 만들던 해에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의 첫 그림책은 이 책이 알맞을 것 같다. ‘엄청난 눈’은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모든 독자가 잠재력을 마음껏 발견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46쪽, 1만9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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