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실종된 소녀와 남겨진 사람들.."삶은 계속된다"

박동미 기자 2021. 1.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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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여자아이가 실종되면서 시작하는 소설은, 여러 차례 기대를 저버린다.

안개가 낮게 깔린 겨울, 영국의 한 작은 마을, 저수지를 훑는 헬리콥터 소리, 강바닥을 살피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잠수부들의 머리. 이 스산한 풍경 속에서 독자들은 곧 그 여자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그러나 소설은 이 의식의 흐름을 배반한 채, 기대와 상상 저 너머 외딴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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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13 │존 맥그리거│김현우 옮김 창비

열세 살 여자아이가 실종되면서 시작하는 소설은, 여러 차례 기대를 저버린다. 안개가 낮게 깔린 겨울, 영국의 한 작은 마을, 저수지를 훑는 헬리콥터 소리, 강바닥을 살피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잠수부들의 머리…. 이 스산한 풍경 속에서 독자들은 곧 그 여자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저수지 위로 떠오를까, 강어귀에서 발견될까. 마을 사람이 그랬을까.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그러나 소설은 이 의식의 흐름을 배반한 채, 기대와 상상 저 너머 외딴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사건 뒤에 숨은 비밀이 아니라, 그 비극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인간과 자연 세계를 관찰하는, 어떤 경이로운 시선 속으로 말이다. 가디언은 이를 “상실과 시간에 대한 으스스한 명상”이라고 비유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이 작품으로 2017년 영국 문학 최고 권위의 코스타 상을 수상한 존 맥그리거다. 그가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다소 늦게 국내 출간됐다. 같은 해 맨부커상 최종에 올랐고, 해외 유력지들의 ‘올해의 책’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책은 무수히 많은 조각이 흩어졌다가, 빈틈없이 짜 맞춰진 퍼즐 같다. 사라진 여자아이는 열세 살이고, 수색은 13년간 이어진다. 소설은 총 13장으로 이뤄졌다. 열세 명의 인물, 열세 곳의 장소, 열세 개의 직업, 열세 종류의 동물들. 시간과 함께 이야기는 차곡차곡 쌓인다. 작가의 표현이기도 한 ‘쌓인다’라는 말은 정확하다.

이 소설의 한 장은 한 해의 흐름으로 구성됐고, 그것이 총 13번 반복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책은 사라진 소녀를 쫓는 것만큼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소중하게 그려낸다.

어느 날은 눈이 내려 그 눈이 쌓이고, 4월엔 제비가 돌아오고, 8월은 푹푹 찌며 크리켓 정기 시합이 열리고, 10월엔 서머타임이 끝난다. 어느 해는 가물고, 어느 해엔 화재가 난다. 누군가 태어나고, 아프고, 죽고,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오고, 결혼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며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소녀를 기억하고, 가끔 꿈을 꾼다. 또,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어떤 때는 머릿속 주변부로 밀어내지만, 종국에도 잊지는 않는다.

작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삶에서는 뭔가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며 “계속되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아니, 남은 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시간은 아무리 우리가 멈추고 싶다 해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 작가의 말에 힌트가 있다. 물론, 책엔 정답도 있다. 368쪽, 1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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