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성마른 바흐, 완벽한 음악으로 평화를 찾았다

기자 2021. 1.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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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 : 천상의 음악│존 엘리엇 가디너 지음│노승림 옮김│오픈하우스

바로크 음악 연구·연주해온

‘음악적 영매’ 지휘자 가디너

수많은 역사적 자료 동원해

바흐의 총체적 세계관 조명

가사·음악배경 교차하며 쓴

90여쪽 ‘요한수난곡’ 압권

존 엘리엇 가디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바흐, 헨델, 몬테베르디 등 바로크 시대 음악을 당대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정격 음악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흐 칸타타 전곡을 녹음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흐 : 천상의 음악’(오픈하우스)은 가디너가 바로크 음악에 대한 오랜 연구와 연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쓴 기념비적 작품이다.

바흐는 기이한 인물이다. 이 거장은 자기 삶에 대해 거의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방대하고 풍부한 음악 목록과 달리 극히 제한된 정보를 강도 높게 편집해 자식에게 물려주었을 뿐이다. 교회 오르간 연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제외하면, 바흐가 직접 쓴 글이라곤 따분한 편지들, 제자들을 위해 쓴 추천서들, 근무 여건 등을 둘러싸고 시청 공무원한테 보낸 항의 편지들, 왕실 인사한테 바친 아첨 넘치는 문구들이 대다수다.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꿰뚫는 그 놀라운 음악 작업에 대해서도 바흐는 털어놓은 바가 거의 없다. 수준 높은 음악 기법을 어떻게 터득했느냐고 물으면, 바흐는 퉁명스럽게 답하곤 했다. “부지런한 게 답이지. 누구든 나처럼 부지런하면 그만큼 성공할 수 있네.”

저자에 따르면, 음악인 바흐와 생활인 바흐는 달랐다. 완벽함의 전형인 음악과 달리, 바흐의 인생은 무질서가 넘쳐났다. 바흐는 성마르고 모순적이었으며, 거만했으나 지적 도전 앞에서는 소심했다. 또한 남을 불신하고 이익을 우선했으며, 자기 잘못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실수에는 엄격했다. 몇 차례 쫓겨나기도 하는 등 권력과 갈등이 잦고, 자기와 관계없는 사건에 충동적으로 대응해 마음의 평화를 해쳤다. 이러한 다층적 기질은 아홉 살 때 고아가 돼 맏형 밑에서 오르간을 배우며 외로운 청년기를 보낸 삶의 이력과, 멍청하고 교양 없는 권력자 앞에서 굽실대야 하는 정신적 고통에서 나왔다.

그러나 날 것 그대로의 물질적 삶에 극히 민감해하면서, 내세에 천사들과 함께 연주할 것만 같은 천상의 음악을 남긴 바흐의 진짜 얼굴은, 그가 남긴 시시한 문서나 조각난 일화보다 그가 연주하고 작곡한 음악에서 더 선명히 드러난다. 바흐의 음악에는 한 인간의 열정과 창의력, 지성과 재치 등을 담은 언어의 목록이 존재한다. 바흐의 인간성은 완벽하게 조화로운 음들의 향연과 그와 정교하게 맞물려 전개되는 가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칸타타, 모테트, 수난곡, 미사곡 속에 풍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책이 바흐의 생애 전체를 다룬 세밀한 평전이면서 동시에 바흐의 합창곡 등에 대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해설서인 이유다.

바흐는 1685년 독일 튀링겐의 아이제나흐의 숲 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동네 관악대원으로, 집안 전체가 음악 관련 일을 했다. 바흐는 가문에 축적된 음악적 역량 속에서 자라났다. 가령, 바흐의 음악에는 삶과 죽음을 나란히 배치하고 강렬한 주관성과 대위법적 간격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사촌 요한 크리스토프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

1702년 겨울, 열일곱 살의 바흐는 바이마르 작센 대공의 전속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다. 다음 해에 아른슈타트 신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로 옮겼다. ‘85클래스’라고 불리는 동갑내기 헨델과 스카를라티도 활동을 시작했다. 약간 선배로 라모, 텔레만, 마테존도 있었다. 하지만 바흐는 다른 이들과 달리 오페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에 그를 매혹한 것은 1707년 무렵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그리스도가 죽음의 속박에 놓이셨도다’ 같은 칸타타였다. 라이프치히 시절 초기 몇 년 동안, 바흐는 매주 예배를 위한 칸타타를 작곡해 매년 평균 60편의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17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흐의 삶은 대부분 루터 교회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의 음악에는 루터교 신앙이 농축돼 있다. 어린 바흐를 둘러싼 튀링겐의 어두운 숲은 바흐의 정신에 죽음이라는 상상의 뿌리를 심어놓았다. “삶의 한가운데 우리가 있도다.” 루터의 노래처럼, 죽음은 항상 바흐 곁에 있었다. 어릴 때에는 부모를 잇달아 잃고, 아내와 형제를 빼앗겼으며, 자녀 스물 중 열둘을 세 살도 안 돼 떠나보냈다.

그러나 해마다 봄이면 숲이 다시 깨어나듯, 죽음에 농락당하는 고난의 세상에 대한 사유는 바흐의 음악에서 구원의 희망에 대한 깊은 갈구를 불러왔다. 물론, 바흐는 이전의 교회 음악을 넘어 음악의 가능성 자체를 확장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삶의 근원적 존엄성과 신성함에 대한 인식을 넓혀 나갔고, 자신이 사는 세상과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이해하려고 했다. 완벽한 음악을 향한 갈망 속에서 결국 바흐가 얻으려 한 것은 평화였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바흐의 마지막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울림이다. 바흐는 음악의 완전성으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책에서 가디너는 바흐의 음악적 영매를 자임한다.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동원해 바흐 시대의 정치적·사회적·자연적 환경을 복원함으로써 바흐의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문화적·교육적·음악적 맥락을 되살림으로써 바흐의 작곡 기법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전문가답게 저자는 언어를 통해 바흐의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당대 청중들의 반응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체험시킨다. ‘요한수난곡’을 한 소절 한 소절 가사와 음악을 교차해 가면서 100쪽 가까운 길이로 들려주는 장은 압권에 해당한다. 이 책은 바흐의 음악을 배경까지 살피면서 지적으로 이해하고, 연주를 통해 그 세부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책이다. 아마도 가디너가 연주하는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해당 부분을 읽는 것이 이 책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1028쪽, 5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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