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작가주의 건축가 최재복
[효효 아키텍트-68] 팻말도 없는 문을 열고 건축가를 찾았다. 수개월 전 방문했던 서울 근교 어느 화가의 공장형 화실보다도 작은 사무 공간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최재복 건축가가 일어났다. 입주한 건물 역시 인근 서울 숲(forest) 이름을 차용한 대형 빌딩의 위용에 비하면 초라하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바깥 추위를 녹였다. 진정한 '건축 아틀리에(atelier)'를 찾은 느낌이었다.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황두진 건축사무소 근무 경험이 계기가 되지만, 이전부터 공간에 놓이는 오브제로서 일반 건축물에 식상해 있었다. 해가 지고 뜨는 계절별 하루하루의 날씨와 시각에 따라 그 자체로 건축물이 읽히길 원한다.
비유학파인 최재복 건축가는 일찍 대형 건축사무소에서 현대건축에 대한 실무를 익히면서 한국적 양식을 탐구할 필요를 느꼈다. 처마를 아래에서 바라본 양끝이 건물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안허리'를 외국에서는 배울 수 없다. 전통 가옥과 촌락을 같이 보았다. 가옥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변 지세, 기후, 거주해온 계층, 주거와 밀착한 주민들의 의식 등 촌락의 부분으로서 지위와 역할이 주어진다는 걸 알았다.
설계가 핵심 역량인 건축가가 한옥에서 모티프를 가져오면 건축에 관한 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소위 '갓 콤플렉스'에서는 벗어난다. 최재복은 빛, 그림자, 바람, 비와 같은 자연적 요소와 건축이 어울리길 원한다. 최소한의 형식과 구조를 활용해 주택이 딛고 선 과거, 현재, 미래의 자연 조건에 부합하는 걸 만들어낼 뿐이다.
40대인 최 건축가는 기라성 같은 대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일본 건축가들, 빛의 연출자 루이스 칸의 건축물들을 해석하고 소화하려 애썼다. 건축가의 핵심 역량인 설계는 하버드대 출신인 정재욱 교수로부터 재학 내내 배웠다. SKM건축사사무소(대표 민성진)에서는 골프장의 핵심인 클럽하우스(충남 아산 아름다운CC)와 타운하우스(헤르만 하우스) 등 집합주택, 황두진사무소에서는 강릉 씨마크호텔의 영빈관인 호안재 등의 설계를 맡았다.
서울 은평구의 '생활서가'는 작은 평면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한옥 구조의 핵심인 작은 마당을 유리로 덮었다. 평면인 마당은 흙으로 덮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지하 공간은 지상층보다도 채광이 좋은 생활 공간으로 거듭난다.
최재복 건축에는 '공간의 수직적 연속성'이 적용된다. 일과 생활을 한 공간에서 해결하는 재택(在宅)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복합 구조다. 한옥의 지붕이 길게 뻗는 구조에서 틈새 공간을 창출해내고, 지하층은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마감한다. 콘크리트, 목조 구조, 한옥의 장점만을 취했다. 높은 지가(地價),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 등도 고려했다.
건축 설계 시장은 한정되어 있으나 좋은 스펙과 역량, 지식과 경험을 갖춘 공급자들은 넘친다. 상당수는 유학파 출신들이다. 이들이 배운 교육과정이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내재된 정서를 설계에 반영하는 이는 잘 없다.
역대 최연소 중국인 최초로 201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왕수는 비유학파, 중국 토종이다. 왕수는 저임 노동력, 싼 고(古)벽돌 재료의 취득 등 여러 환경 요인으로 스케일과 규모 있는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건축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었다. 최재복 건축가는 따라하면 쉬운 길도 자신만의 건축 언어 고유성과 독창성을 고수하는, 다른 이와 달라야 한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 현대건축을 파고든 결과, 독자적인 내부자 시선(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선이 왕수를 뛰어넘는 거장에 이르는 길임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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