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노래가 아니라 인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1. 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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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과 김다현의 노래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최선을 다한 개그우먼 김명선의 무대도 감동이었다
이 프로는 노래자랑이 아니라 인간 승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7일 방송된 미스트롯2 팀미션이 끝나고 멤버들이 탈락한 김명선을 위로 하고있다./tv조선

중학생 전유진과 초등학생 김다현이 아마도 마지막 무대까지 갈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노래는 거의 흠잡을 곳이 없으며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타고 난 것이다. 팀 미션이란 이름으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춤 추거나 마디를 나눠 불렀지만, 보석은 가만히 있어도 자갈 속에서 빛난다. 특히 이전 무대에서 장기를 감추고 겸손한 목청을 선보인 전유진은 보란 듯이 성량을 터뜨리며 모든 참가자들을 압박했다.

전유진은 이미 팬클럽이 결성될 만큼 인기가 있다는데,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이 10대 여자아이에게 이 노래 경쟁이 너무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만큼 이 어린 노래꾼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팀을 만들어 경쟁에 나섰기에 춤도 열심히 춰야 했고 노래의 어려운 파트만 부르는 걸그룹 특유의 공식을 따라야 했다. 그녀와 함께 주 멜로디를 책임진 성민지도 대형 가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였다.

전유진이 미스트롯2에 참가해 본선 1차 팀미션에서 노래하고있다./TV조선

판소리를 배운 초등학교 6학년 김다현은 같은 또래 팀을 이끌며 또렷이 다른 목소리를 들려줬다. 이 친구는 국악과 트로트 사이의 간극을 잘 이해하고 있어 아무렇게나 끌고 빼지 않고 트로트 정통의 비브라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머지 초등학생들이 귀여운 노래 신동의 모습으로 일관할 때, 김다현은 앞으로 대형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무대를 보여줬다.

미스트롯2 팀미션. 초등부 김다현 /tv조선

어제 무대에서 개그우먼 김명선에게 감동했다. 김명선은 합창단으로 치면 앨토 파트에 어울리며 이런 식의 경연에서 솔로로 노래를 뽑기에는 음정이 정확하지 않다. ‘서울패밀리’의 위일청이 그녀를 가르치며 “피치가 낮다”고 지적한 것은 합당했다. 그러나 합창단의 앨토 파트에서 피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성량과 표현력이 더 필요한 법이다. 심사위원단에 있던 가수들 역시 언제든 “피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김명선에게 ‘미스 트롯’은 공정한 무대가 아니었다. 김명선은 탈락한 후 “여기까지 온 것만도 너무 감사하고 이런 날이 나에게 언제 올까 생각했다. 후회 없고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오페라 무대에서 늘 소프라노가 주목을 받지만, 앨토나 메조 소프라노가 없으면 어떤 소프라노도 영웅이 될 수 없다. 김명선의 활약은 그만큼 대단했다.

미스트롯2 팀미션 . 연합부 김명선/tv조선

쇼를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니까 벌어진 일이겠지만, 발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할 정도로 뛰어간 진달래의 투혼은 안쓰러웠다. “내가 다쳐서 미안해”라며 팀원들에게 울며 사과하는 그녀를 보며, 이 무대가 그만큼 간절한가 하는 생각과 함께 대관절 노래로 인정을 받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교차해 마음이 착잡했다. 깁스를 하고 무대에 나와 동료들과 노래하는 그녀, 그런 그들을 보며 눈물 짓는 심사위원들을 보며 이 프로그램은 노래 자랑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라면 깁스하고 나와 노래하는 사람을 탈락시킬 수 있겠는가.

버블시스터즈 출신 영지가 포함된 팀은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을 불렀다. 이 노래는 록 비트를 기본으로 하는 팝이기 때문에 트롯으로 소화하기 힘들었는데 왜 선택했는지 의아했다. 다른 멤버들은 의도적으로 노래를 끌고 꺾는 데 집중했고 영지는 후렴 부분을 원곡 톤으로 밀고 나갔다. 팀 미션이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영지가 아니었으면 이 노래는 실패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팀 전체가 탈락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선곡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모르지만,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유호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전선야곡’을 젊은 참가자들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참가자들은 이 노래를 처음 듣는다고 했고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같은 가사를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서 꺾고 휜다고 트로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이다. 트로트는 뽑아내고 꺾고 흐느낀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가사와 멜로디와 박자에 몰입해서 한몸이 돼야만 간신히 추려낼 수 있는 음악이다. ‘미스트롯’이란 이름 아래 흘러든 수많은 개울들이 어떤 강으로 합쳐져 바다로 나아갈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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