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따라 흘러간 청춘

최재봉 2021. 1. 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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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시인의 시 '눈먼 가수의 길' 한 대목이다.

누구에게나 심중에 여투어 둔 노래 한두 자락쯤은 있다.

김형수의 에세이 <유행가들> 은 그가 듣고 부르며 한 세월을 지나 온 노래들에 얽힌 추억담이다.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 "'대한뉴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축음기를 틀었다." '무너진 사랑탑' '아빠의 청춘' '마도로스 박' 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사나이 정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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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유행가들김형수 지음/자음과모음·1만3800원

“가난과 독재, 실패한 연애의 계절에도/ 노래는 우거지고/ 나무도 잎새도 그 위의 하늘도/ 선율로 가득한 젊음이 끝나도/ 목 쉬어 우는 소멸의 노래가 다시 살아나/ 풀잎 시든 벼랑에도 메아리가 있었다”

김형수 시인의 시 ‘눈먼 가수의 길’ 한 대목이다. 누구에게나 심중에 여투어 둔 노래 한두 자락쯤은 있다. 듣는 이들이 박수 대신 야유와 웃음으로 화답하거나 노래방 기기 점수판이 박한 숫자로 ‘팩폭’을 가할지언정, 스스로는 전율 같은 감동으로 몸서리를 치게 되는 영혼의 울림. 노래는 유구하고 힘이 세다.

김형수의 에세이 <유행가들>은 그가 듣고 부르며 한 세월을 지나 온 노래들에 얽힌 추억담이다. 전라도 함평 장터의 주막집 아들로 태어난 지은이는 서커스단과 떠돌이 영화사, 약장수, 국극단 등 ‘연예인’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다. “떠돌이 영화사가 들어오면 끝도 없이 유행 창가가 쏟아져 나오고, 국극단이나 약장사 굿이 오면 신민요 타령이 넘쳤으며, 서커스단이 오면 재즈에 절었다.” 한국 대중가요의 발흥기 레퍼토리들이 그의 주막집을 훑고 지나갔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는 장터에 극장이 생겼다.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 “‘대한뉴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축음기를 틀었다.” ‘무너진 사랑탑’ ‘아빠의 청춘’ ‘마도로스 박’ 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사나이 정신을 배웠다.

그가 광주의 고등학교로 진학해 대학생 형과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그 형은 제과점 디제이를 본업 삼아 하며 <월간 팝송>을 정기 구독하고 손수 조립한 누드 전축으로 음반을 들었다. 밥 딜런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비롯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솔밭 사이로 강은 흐르고’ ‘스카버러 추억’ 같은 외래 가요들을 그때 접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주제곡이었던 송창식 노래 ‘고래사냥’이 준 감흥을 못 이겨 반 친구들과 동해안으로 무전여행을 떠난 것은 고 2 때였다.

“도서관도 서점도 없는 마을에서 내게 ‘존재의 형식’을 전하는 것은 노랫가락에 얹힌 가사들뿐이었다.”

그에게 노래는 삶의 교사이자 문학 교사였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유행가에 대한 사랑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였다. 계림동 헌책방에 들렀다 나오던 문학청년은 제 눈앞에서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에 할아버지가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뒤돌아 뛰는 그의 귀에는 노고지리의 노래 ‘찻잔’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산울림과 조용필을 버리고 ‘오월의 노래 2’ ‘타는 목마름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운동 가요들 그리고 정태춘과 김광석, ‘노래를찾는사람들’ 쪽으로 옮겨 간다.

<유행가들>은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과 김건모 등에 관한 간략한 언급으로 막을 내린다. 어느덧 삼십대에 접어든 그와 당대에 유행하는 노래들과의 거리는 회복하기 어렵게 멀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90년대 이전, 지난 시절의 유행가들에 마음을 빼앗겼던 세대에게 맞춤한 추억담이겠다. 지은이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대로다.

“내가 유행가를 듣는 시간은 고향을 사랑하는 시간이고, 내가 거쳐온 풍속사의 향기를 다시 맡는 시간이며,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을 달래고 위무하는 시간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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