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먹는 게 꿈이라던 소녀 .. 그길로 쓰기 시작했죠."

최윤아 2021. 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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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 코로나19로 달라진 세계 담은 새 작품 출간
엄마 미술학원은 문 닫고 아이는 놀이 잃었지만 '백발 신입생'이 선사하는 위로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황선미 글, 박정섭 그림/주니어김영사·1만3000원

“제자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이 책을 읽고 ‘이거 완전 우리 얘기야’라고 했다더라고요. 쓰길 잘했다 싶었죠.”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황선미 작가는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를 쓰기 전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레트로 열풍 덕에 갑자기 유행이 된 달고나를 소재로,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쓰려니 작품의 생명력이 너무 짧을까 걱정이 앞섰다. “달고나도 코로나도 금방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는데, 학교 가서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쓸 순 없잖아요? (웃음) 그건 거짓말이니까.”

주저하던 황 작가를 책상 앞에 앉힌 건 뉴스에서 스치듯 지나간 한 소녀였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소녀는 ‘학교에 가서 급식 먹는 거’라고 답했다. “세상에, 그런 당연한 게 꿈이라니 기가 막혔어요. 도대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 짧은 인터뷰가 저를 쓰게 만들었어요.”

코로나19가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황 작가도 수정을 거듭했다. 등교를 못 하던 4월엔 학교에 못 가는 내용으로 쓰다가, 코로나19가 한풀 꺾였던 6월엔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 학교에 나간다고 이야기를 뜯어고쳤다. 이런 출렁거림을 모두 끌어안은 덕분에 책은 “진짜 우리 얘기”가 됐다.

지난달 28일 만난 황선미 작가는 “1년 동안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도 실제로 학생을 만나면 알아보지 못한다. 옆모습도 못 보고 1년을 보낸 것”이라며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는 달콤쌉싸름한 달고나에서 시작된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달고나를 처음 알게 된 초등학교 1학년 새봄. 연예인 아빠와 달고나를 만들어 먹고, 시장에 가면 이유 없이 상인들에게 용돈도 받는 티브이 속 아이들을 새봄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코로나19 탓에 여행작가인 새봄의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엄마는 막 문을 연 ‘샤갈의 아이들’ 미술학원을 닫게 생겼다. 답답한 새봄은 마스크를 쓴 채 홀로 집을 나선다. 그러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만난 한 남자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사탕을 선물 받고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고대하던 등교 첫날. 교실에 달고나를 선물한 아이는 없고 웬 백발 할머니가 앉아있다. ‘쉬는 시간은 5분, 서로 가까이 가지 말 것’ 엄격한 규칙에 얼어 있던 아이들은 잠시 주어진 놀이시간에 ‘공기’를 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진짜 돌멩이로 발군의 공기 실력을 뽐내는 할머니에게 반한 아이들은 그제야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꿈이 뭐예요?” “내 꿈은 학교를 다니는 것. (…) 글자를 다 배우면 운전면허를 따고 대학생이 되어야지.”

코로나19에도 일상은 계속된다. 새봄은 드문드문 학교에 가고, 엄마는 아빠의 귀국 비행기 표를 마련하기 위해 미술학원을 잠시 중단하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다. 문 닫은 미술학원 유리 벽에는 이렇게 적힌 그림을 걸었다. ‘달고나처럼 달달하기. 그리고 부디 조금만 부서지기.’ 이야기는 새봄이 그토록 기다렸던 달고나를 선물한 남자아이가 마침내 교실에 등장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면서 끝을 맺는다.

ⓒ박정섭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부서진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초등학교 신입생 할머니를 등장시켜 상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뒀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화 속 할머니는 초가집에서 비녀 꽂고 사는 것처럼 그려져요. 그런데 요즘 할머니는 그렇지 않거든요. ‘욕구가 있는’ 새로운 시대 할머니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학교의 본질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수업은 비대면으로도 가능하지만, 친구를 사귀는 건 신체 접촉이 필요하더라고요. 나눠 먹고, 같이 쓰고, 엉겨 붙고 그러면서 친구가 되잖아요.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건 놀이고요. 학교는 그저 공부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있음’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공간이었던 거예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마당을 나온 암탉> 저자인 황 작가는 현재 서울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책 읽을 시간도 기회도 늘어난 코로나19 시대,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하는지 물었다. “정평이 난 작품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요? <인어공주> 같은 작품도 원작을 읽어보면 문장이 아름답다는 게 확 느껴질 거예요.”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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