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한 새로운 언어, SF

한겨레 2021. 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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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빛속')이 나온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작엔 '우빛속'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세상이 '허블' 밖에서 '우빛속'을 바라볼 때 '허블'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통의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이들이 '우빛속'을 탄생시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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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책이 내게로 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허블(2019)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우빛속’)이 나온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역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긴 하나, 그래도 출판시장에서만큼은 ‘에스에프(SF)’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그리고 그 시작엔 ‘우빛속’이 있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 걸 지켜보는 일이란 흔치 않다. 하물며 내부인의 자리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 덕분에 나는, 세상이 ‘허블’ 밖에서 ‘우빛속’을 바라볼 때 ‘허블’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빛속’이 가져온 변화를 이해할 때도, 세상 쪽으로 초점을 자연스레 맞추게 되었다.

세상의 반응은 따듯하고 놀라웠다. 독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지구 밖에도 있다는 상상력에 위로받았다” “현실 세계와 달리 에스에프가 만든 세계는 개인의 감정에 공명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등 감상평을 남겼다. 그 감상평의 말미에 대부분 볼 수 있었던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내 인생 첫 에스에프가 따듯해서 다행이다”란 반응이었다. 이를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제 막 에스에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구나.’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엔 좋은 에스에프가 일찍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일부 마니아의 눈에만 들어올 뿐, 대중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김초엽 작가의 지난해 <시사인> 인터뷰를 빌리자면, “(2010년 당시) 에스에프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작품을 전부 합쳐도 책장이 꽉 차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 에스에프가, 특히 한국 에스에프가 갑자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의 힘만은 아닌 듯하다. 결과론적인 생각이긴 하나, 세상의 부름에 ‘우빛속’이 응답했다고 보긴 어려울까?

뒤이어 나올 질문을 예상하건대, “어째서 다른 작품이 아닌 ‘우빛속’이었나?”일 듯하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은 이미 충분히 나온 것 같다. 예컨대, ‘주 독자층인 20~30대 여성의 취향을 저격하는 정서와 윤리적 상상력’ 같은 분석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변화 원인이 아닌, 변화 이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금 과하게 해석하자면, 우리는 에스에프라는 새로운 언어를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여성을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새로운 언어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언어가 기존엔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단적인 예로, 문단 문학. 사실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좀 더 분명히 다룰 수 있는 건 문단 문학 쪽일지도 모른다. 다만, ‘일상적 소통과 대화의 도구’로 사용하기엔, 문단 문학은 다소 딱딱하다. 현실의 딱딱함을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반면, 에스에프는 현실에서 착안한 가상 세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다룬다. 같은 딱딱함을 다루더라도, 훨씬 부드러울 수 있다. 그 부드러움이 약자와 소수자에게 필요하다. 고통에 대한 분석과 통찰보다는, 우선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기에.

그리하여 고통의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이들이 ‘우빛속’을 탄생시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대해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은 이들의 부름이 있었다고 말이다. 다행히 ‘우빛속’이란 응답은 적절했고, 한국 에스에프는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언어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나는 에스에프가 공감과 연대에 힘을 실어주는 언어로 남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도 그 일에 적극 동참하고 싶다.

김학제 허블 편집팀장

김학제 허블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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