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게, 낯설고 흥미진진한 세상을 만나다

한겨레 2021. 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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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논어> 첫머리 '학이편'에 나오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라 할 만하다"라는 구절을 읽고, 공자에 대해 호감을 품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약자로서의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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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엄은희·구기연·채현정·임안나·최영래·장정아·김희경·육수현·노고운·지은숙·정이나·홍문숙 지음/눌민(2020)

어린 시절 <논어> 첫머리 ‘학이편’에 나오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라 할 만하다”라는 구절을 읽고, 공자에 대해 호감을 품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약자로서의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면접장이나 은행 대출창구에 한 번이라도 앉아본 적이 있다면 낯선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된다. 권력자들은 나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남들이 먼저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몰라, 나 모르겠어?”란 말은 질문이 아니라 권력이다.

지구를 누빈 12인의 현장연구 전문가가 펴낸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를 읽고서 나는 ‘질문의 권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 중국, 홍콩,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타이, 이란, 이스라엘, 베네수엘라 등 총 10개 지역에서 고군분투한 12인의 여성 연구자들의 이야기이다. 세계 여러 지역을 현장 삼아 연구한 이들의 글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당연히 문화인류학이란 학문과 현장연구라는 공통점이 있을 테고, 남성 학자들이라면 경험하지 않았을 ‘여성’ 연구자이기 때문에 감내했어야만 하는 어려움이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질문 앞에서 자신을 내보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이들의 어려움은 “인류학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현지인들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김희경)부터 “다양한 수준의 데이터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한 명의 개인 연구자가 한 사회와 공동체에 녹아들어 관찰하고 참여하여 완성하는 현장 중심 연구는 어떤 가치를 지닐까?”(홍문숙)라는 질문, “왜 이란을 연구하게 되었나요?”(구기연), 때로는 “기저귀도 떼지 못한 생후 19개월의 아이를 한국에 두고 떠난 1년의 현지조사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 인류학자이자 엄마, 아내라는 역할”의 어려움 속에서 “용케 남편이 보내줬네요. 용케 시부모님이 이해해주셨네요.” 같은 물음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그나마 안락한 연구실 대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현장을 천착했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책 속에 들어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책이 합리와 과학의 옷을 입고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면, 학교 밖의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접한 정책에는 매일같이 잡다한 실랑이가 벌어지고 시끌벅적하며 우연한 마주침들이 있었다.”(최영래) 현지조사는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성질의 작업”이 아니며, “하지 않은 현지조사는 있어도 실패한 현지조사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른바 ‘배운 여자들’의 현지조사 후일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연구도구’ 삼아 세상의 경계 위에서 때로는 위태롭게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낯선 세상과 문화를 만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계가 온통 발이 묶인 지금, 이들과 함께 낯선 세상의 우연한 만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참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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