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과 억압 아래 감춰진 14억 저마다의 삶

박민희 2021. 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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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이 20여년간 만난 중국 민간의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중국·공산당과 중국인 동일시하는 고정관념 넘어 개개인 이해 노력 필요

민간중국: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조문영·장정아·왕위에핑·박우·공원국·이현정·김기호·김유익·김미란·윤종석·김도담·문경연·박형진 지음/책과함께·1만8000원

중국인이란 누구일까? 부강해진, 그리고 점점 억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중국 국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혐중은 중국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기본 모드가 되었다. 이 틀로 보면, 중국인은 중국공산당의 애국주의에 세뇌되어 주변 국가를 옛 속국으로 깔보는 오만한 이들거나, 돈과 이익 때문에 침묵하는 14억의 집단으로 환원된다.

<민간중국>은 이런 고정관념의 틀로는 포착되지 않는 ‘중국인들’을 우리 곁에 데려오려는 시도다. 중국을 연구해온 13명의 학자와 활동가들이 지난 20여년 동안 인연을 맺고 마음을 나눠온 ‘민(民)’들의 이야기를 ‘소수민족, 개혁개방, 선전, 일상의 국경’이란 4개의 주제로 나눠 풀어놓는다. 중국인들의 삶은 “시장 지배의 피해자, 피억압자, 잠재적 투사로 낭만화“되거나, “사회 정의에 무관심하고 제 일가를 챙기는 데 급급한 인간으로 폄하되기 일쑤”이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의 삶은 전자도 후자도 아닌 그 접면(接面)에 놓여 있음을 일깨운다.

사회주의 경제의 자부심이었지만 이제는 시장경제의 급류에서 낙오되어 쇠락해가는 동북지역 공업도시 푸순에서 국유기업에서 내쫓긴 노동자 집안인 리핑의 가족들을 만나 보자. 일생 동안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활을 관리하면서 책임졌던 단위체제가 무너지고 국가가 시장에 책임을 떠넘긴 이곳에서, 부모 세대는 함께 모이면 자연스럽게 ‘마오시대’를 그리워하고 술상 앞에 앉아 당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가족들은 모든 자원과 꽌시를 총동원해 온갖 자잘한 방법을 궁리해 생존해 나간다. 병원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꽌시를 동원해 친척들의 약값을 책임지고, 가족들이 이모 집으로 이사해 비운 집을 세를 내줘 월세를 챙기고, 자녀들의 교육에 미래를 걸고, 결국 개천에서 용나듯 칭화대에 진학한 리핑이 친척들을 베이징으로 데려와 취업을 책임지는 억척스러운 삶이 이어진다.

반면, 시장경제의 성공을 상징하는 도시 선전은 세계의 공장이자, 중국의 실리콘밸리이며, 휘황한 고층건물 사이로 ‘성중촌’(도시 가운데 남은 낙후된 마을)들이 점처럼 곳곳에 박힌 극과 극의 도시다. 40만명의 노동자가 아이폰을 비롯한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2010년 17살 여성 노동자 톈위가 입사 37일 만에 기숙사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렸다. 농촌에서 선전으로 와서 첫 출근한 날 그녀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곧바로 작업라인에 배치되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작업대 앞에서 금속판에 이물질이 묻어있는지 점검하는 작업을 매일 2800번씩 반복했다. 자신이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동료들과는 전혀 소통할 수 없고, 일을 마친 뒤 피곤에 절어 숙소에서 쓰러지듯 잠드는 날들이 계속됐다.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닌 부품처럼 대하는 것이 폭스콘이 노동자들을 복종시키고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어느 날 월급 수령 카드를 분실해 월급을 받지 못하자 톈위는 사무실 곳곳을 찾아다녔으나 모두들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해결해주지 않았다. 사방을 헤매다 휴대전화를 분실해 연락할 방법까지 없어진 17살 톈위는 밤이 깊자 수중에 남은 1위안(170원)으로 버스를 탔다. 차비가 모자라 중간에 내려 기숙사까지 걸어온 날 밤, 그는 “버려진 느낌이 들었고,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투신했다. 2016년까지 폭스콘에서 노동자 30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 했다. 2014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쉬리즈(1990년생)는 이런 시를 남겼다. “조립라인에서 펜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나는 내 청춘이/ 꿀렁꿀렁 흐르는 것을 보았다. 마치 피 같은 (…)/ 다행히 내가 있는 작업반이 나에게/ 기계와 같은 두 손을 내려줘서/ 피곤한 줄 모르고 척, 척, 척/ 손에 화려한/ 못과 피나는 상처가 가득 피고서야/ 나는/ 내가 진즉에/ 오래된 조각상이 된 것을 알았다.”

랴오닝성 푸순의 길거리에 국유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조문영 교수 제공

이처럼 지난 몇십년 동안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대국으로서의 성장, 계획경제 시기에 구축된 각종 질서의 와해와 재편, 초국적 이동의 확산과 불평등의 심화가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변동을 겪어왔다. 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급류 속에서 시위와 파업, 소요와 폭동도 일어났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지만, 많은 이들은 급류를 타거나 피하면서 생존과 안전, 부를 도모하고, 이런 삶들이 얼기설기 엮이며 중국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문화대혁명(문혁)은 소수민족에게 이중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길림성(지린성) 용정의 1978년생 조선족 김형은 초등학교 즈음부터 동네 ‘주먹’형들과 어울려다녔다. 김형이 소속된 무리의 두목은 문혁의 혼란 속에서 ‘정치 깡패’ 역할을 하다 지금은 버려진 삶을 사는 인물이다. 문혁 당시 연변에는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이 잠입하여 한족 민족주의를 고취하면서 중국 동포 엘리트들을 공격했고, 이 와중에 이런 ‘주먹’들의 물리적 공격도 횡행했다. 문혁이 끝난 뒤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연변에는 한국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김형은 서태지와아이들의 노래를 비롯한 한국 가요를 위안 삼아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 대학을 졸업한다. 그는 무역회사에 취직해 상하이 법인의 부대표가 되어 상하이의 중산층으로 거듭나는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1963년생 회족 예술가 마다홍은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스스로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예술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고 사진작가가 되었다. 수십년 동안 위구르인들의 땅인 신장을 돌아다니며 소수민족들의 삶을 찍었지만, 점점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현재의 중국 상황에서는 작품을 전시할 수도 팔 수도 없다. “전시하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좋은 작품은 필요한 사람, 박물관, 혹은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줄 겁니다. 비록 내가 고생하고 점점 가난해지면서 찍었지만요. 남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나는 말하죠, ‘당신들 작품은 당신들 주류 사회에서 유통될 뿐, 실제 세계는 아니야. 진짜 세계의 문명, 그것은 중국 주류 사회와 관계가 없어.’”

‘국경’조차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주한미군 사드 배치 허용에 대한 반한 감정이 중국 곳곳에서 번져가던 2017년 3월15일, 조선족 기업가가 운영하고 조선족과 한족 노동자들이 김치를 생산하는 산둥성 칭다오의 천천식품(가명) 공장에 식품약품관리국 단속반이 들이닥친다. 이들은 김치 포장지에 조그맣게 인쇄된 문구에서 조미료를 학명으로 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품 압류 조처를 취했다.

사드 보복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반한 감정과 불매운동’으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중국 속의 ‘한국’으로 살아가던 조선족 김치 공장 사업가들, 한국인 식품업체 사장들, 일자리를 걱정하는 한족 노동자들에게도 사드 보복은 무겁게 다가왔다. 살아남기 위해 천천식품 사람들은 ‘고급스런 한국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김치 포장지에 넣었던 한글과 한복 입은 사진 등을 빼고 ‘한국식 김치’ 표현을 ‘동북지역 조선족식 김치’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이 책의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는 없다. 조금은 중구난방 같은 삶들 속에 국가와 사회, 국경, 노동, 문화와 정체성 등이 각각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중국’과 ‘중국인’을 간명하게 규정하고픈 욕구에 이 책은 저항한다. 책을 기획하고 글들을 엮은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중국인들의 삶이 중국이란 국가 또는 공산당과 동일시되고, 한국에 대한 위협, 온갖 혐오의 응축물로 너무 쉽게 환원되어버리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며 “책을 읽는 이들이 중국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자본주의 시대의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사람들임을 공감하고,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제도나 체제에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올해 100주년을 맞는 중국공산당은 체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탄압하면서, 인민들과 외부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만리장성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이런 시대일 수록 중국인들 개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혐중과 억압 아래 감춰진 삶을 들여다보며 연대하려는 노력은 가장 의미있는 ‘저항’일 것이다. ‘민간중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색도 모양도 다른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조각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조각보’를 더해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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