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으로 변신한 아이돌.."관종 끼 살려 꼰대문화 개선"
2014년 남성 아이돌 BTL 데뷔..활동 접고 취업 골인
보수적 조직문화 개선 기획.."인사 팀장 나오라 그래"
아이돌 생존법 '관종力' 업무에 보탬.."즐기면서 해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포부요? 그런 거 없어요. 즐기면서 하는 거죠.”
한국야쿠르트 사원 이상현(29)씨는 연초부터 중책을 맡았다.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MZ(밀레니얼+Z) 세대에게 회사를 알리는 업무다. 식품회사 특유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으려는 모험적인 시도다. 이런 일을 입사 1년밖에 안 된 이씨가 한다. 어깨가 무거운 이씨를 지난 4일 회사 본사에서 만났다. 포부를 물었더니, “그런 거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가 제대로 된 사람을 앉힌 듯 싶었다. “자네 포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옛날 소통 방식이고, 이걸 벗어나려던 게 회사의 의도 아니었던가.
관종 기질 살려서 조직에 `신바람`
일을 즐기려는 태도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터득했다. 이씨는 2014년 5월 남성 9인조 아이돌그룹 비티엘(BTL) 멤버로 데뷔했다. 케이블TV 엠넷의 `엠카운트다운`에 등장하자 `판타스틱 짐승돌` 소리를 들었다. 홍콩에 진출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현지에 그의 얼굴이 도배된 래핑 버스가 돌아다녔다. 광고도 제법 찍었다. 2016년 2월 활동을 접기까지 소녀 팬 깨나 울렸다.
아이돌 출신 사원보다, 회사가 그에게 맡긴 중책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그가 준비하는 콘텐츠 내용이다. 다음 달 출범하는 유튜브 채널명을 `야인마`(야쿠르트에서 인정받는 마케터 준말)로 짓고, 거기에 담을 콘텐츠로 `라떼 처리반`을 기획했다. 보수적인 회사 문화를 바꿔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이씨가 면접관이 돼 채용 담당 인사팀장을 면접보고, 회사 사장을 대상으로 영업해보려고 한다. 되도록 회사나 제품 얘기는 안 할 생각이다.
“회사나 제품이 콘텐츠 중심이 되면 MZ 세대는 관심을 두지 않을 거예요. 광고로 여기니까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 맥락에 우리를 녹여 넣으려고요.”
“소속사가 힘들던 시절 무대 영상을 만들어줄 직원이 없었어요. 그때 영상을 배웠죠. 아티스트가 이런 거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써먹을 줄 몰랐죠.”
편견 어린 시선…“뭐래도 내 인생”
실패한 경험을 얘기를 하는데 구김이 없다. 소속사가 휘청이면서 2016년 그룹이 해체했다. 곧장 ‘프로듀스 101’ 출연을 준비했지만 무산됐다. 말하자면 `실패한 아이돌`이었다. 이런 시선은 활동을 접은 뒤에도 따라다녔다. 어떤 기업은 `아이돌 출신이라 신기해 면접장에 불렀다`고 했다.
“남들은 편견 어리게 봐도, 제 인생이잖아요. 자기소개서에서 항상 아이돌 경력을 강조했어요.”
새로 맡은 업무는 무대에 남은 아쉬움을 달랠 기회이기도 하다. 영상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아이돌과 `라떼처리반`은 크게 다를 게 없다. 같은 업무를 맡은 동기사원 김나현(28)씨는 든든한 동료다. 채널명 `야인마` 작명도, `라떼처리반` 기획도 김씨 역할이 컸다. 이씨는 김씨를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했고, 김씨는 이씨를 “카메라 앞에 서면 텐션이 상승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씨가 무대를 그리는 PD라면, 이씨는 무대를 채우는 아이돌이다.
“만드는 우리가 즐겨야 보는 소비자도 즐거울 것”이라는 게 김씨의 신조다. 쿵짝이 잘 맞는 PD와 출연자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저희도 나이를 먹겠죠. 그러면 젊은 세대와 소통이 이전같지 않을 테고요. 그땐 지금 일에서 손 떼야죠.”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땐 빠진다)를 아는 게 영락없는 MZ 세대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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