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설] 정부·국회 '보여주기식' 대책으론 아동학대 못 막는다

2021. 1. 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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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상습 학대로 사망한 '정인양 사건'은 아동학대 예방 정책의 총체적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3년 갈비뼈 16곳이 골절된 채 사망한 7세 울주 이서현양 사망사건 계기로 아동학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되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국고 지원이 이뤄지는 등 점진적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사건이 날 때만 요란할 뿐 학대 예방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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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입양시설, 아동보호기관 총체적 허점
인력·예산, 현장 적극 개입 여건 조성 필요
김창룡 경찰청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후 16개월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양 사건'에 대해 발언을 마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상습 학대로 사망한 ‘정인양 사건’은 아동학대 예방 정책의 총체적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13년 갈비뼈 16곳이 골절된 채 사망한 7세 울주 이서현양 사망사건 계기로 아동학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되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국고 지원이 이뤄지는 등 점진적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비슷한 학대 사건이 터지고 있다. 사건이 날 때만 요란할 뿐 학대 예방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정인양 사건은 아동보호 책무를 지닌 입양기관, 경찰, 아동보호 전문기관, 어린이집, 의료인들이 모두 개입했으나 아동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경찰은 세 번이나 신고가 접수됐으나 번번이 내사종결하거나 학대 증거가 없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정인양의 학대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분리 등 응급조치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입양기관은 아동보호 전문기관으로부터 학대 신고를 받고 정인양 집을 방문해 학대 흔적을 발견했지만 양부모에게 “민감하게 대처해 달라”고 안내하는데 그쳤다. 아동학대 사건은 관련기관의 정보 공유와 협업이 중요한데 현장에서 협업은커녕 단편적이고 책임회피식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 대응도 졸속적이다. 정인양 사건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국회는 뒤늦게 계류된 수십건의 관련법안을 심의하겠다고 호들갑이다. 정부도 지난 5일 정인양 사건 8개 대책을 내놨지만 이 중 3개는 지난해 발의된 법안에 포함돼 있다. 국회는 아동사망 시 가해자 처벌 10년으로 강화나 현장 출동ㆍ학대 현장 발견 2회 시 즉각 보호시설 인도 같은 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여론 잠재우기용 대책일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은 ‘가해자 처벌 강화’같은 보여 주기식 입법이 아닌 학대피해아동쉼터 등 인프라 확충과 공적책무가 있는 전담경찰과 공무원들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와 예산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학대예방경찰관(APO)의 경우 한 명이 담당하는 아동이 6,321명에 이를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고, 분리조치 이행 등 학대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가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적극적 판단이 어려운 구조다. 지난해부터 지자체에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들이 배치되고 있으나 잦은 출동과 민원으로 벌써부터 기피직으로 외면받는다고 한다. 아동학대 예방에 필수적인 전문성 강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책무다. 기존의 법과 제도가 잘 활용되고 보호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현장 환경 개선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동학대-공분-졸속대책’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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