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선동하고 '빠' 광신도가 맞장구친 민주주의 공격

2021. 1. 8. 03: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다. 이 중 수백 명은 의사당으로 난입해 원형 홀까지 점거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지지하고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대가 6일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대통령 선거 승리 확정 절차가 한때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이 최루가스까지 동원했지만 바리케이드를 넘고 유리창을 깨고 몰려드는 시위대를 막지 못했다. 의사당 안팎에서 폭음이 잇달아 터졌다. 펜스 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은 급히 자리를 피해야 했다. 경찰이 권총을 겨누며 시위대를 막아서야 했다. 폭도와 다름없는 시위대는 상원 회의장에 들어가 의장석을 차지했고, 하원의장 사무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발을 올렸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남부연합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TV를 통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고스란히 중계됐다. 경찰과 시위대 충돌로 4명이 숨지고 양쪽에서 여러 명이 다쳤다. 미 언론은 “현대사에서 본 적 없는 전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반란”이라고 개탄했다. 세계의 모범이 돼 온 미국 민주주의가 현직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선거 불복 시위대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난입 사태는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했다. 그는 4년 전 당내 경선 때도 한 주에서 패하자 “사기를 당했다”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패하자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시위 현장에 등장해 의회로 가서 항의하라고 부추겼다. 재임 4년 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의 양식과 규율을 파괴해온 트럼프다. 미 정계와 언론에서 ‘쿠데타’ ‘반역죄’란 비판이 나온 것이 지나치지 않다.

트럼프 사태는 세계 민주 국가 모두가 심각히 유념해야 할 문제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철저한 국민 분열이었다. 세계화에 소외되고 일자리를 위협받는 저소득층의 분노와 깊이 감춰져 있던 백인들의 인종차별 의식을 자극했다. 이 전략은 성공해 심지어 패한 이번 대선에서도 무려 7400만표 이상을 득표했다. 인종과 이념, 빈부 격차에 따른 미국 사회 갈등의 골은 적과의 대립처럼 깊어졌다. 나라는 두 동강 났다. 결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는 쇼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했고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쇼와 언행에 열광했다. 반으로 갈라진 국민은 트럼프의 모든 잘못에 눈감았다. 트럼프 팬덤이 형성됐다.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은 모두 이들 트럼프 ‘빠'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트럼프 광신도들이 결국 미 의회까지 공격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정치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유럽의 내각책임제와 더불어 선진 민주제도를 대표하는 양대 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헌법과 법치 수호에 대한 기본적인 사명감이 결여된 포퓰리스트가 그를 맹종하는 광적인 지지자들과 결합됐을 때 대통령제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트럼프가 보여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적대적인 양당제가 결합한 폐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 중 하나도 한국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