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美 의사당 수난사

배성규 논설위원 2021. 1. 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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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의사당(US Capitol)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미 건국 아버지들의 혼이 담긴 곳이다. 윌리엄 손턴이 설계하고, 1792년 조지 워싱턴이 첫 주춧돌을 놓았다. 의사당의 거대한 돔은 워싱턴 기념비와 함께 수도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새 대통령이 이곳에서 취임하고 전직 대통령 장례식도 치러진다.

▶그러나 이 의사당은 많은 수난을 겪었다. 미국 독립 후 영국과 전쟁이 재발했다. 1812년 영국군이 볼티모어에 상륙했다. 영국군은 1814년 워싱턴까지 함락하고 미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의사당 내 예술품과 조각상도 상당수 소실됐다. 백악관을 비롯해 워싱턴 시내 대부분 건물이 불탔다. 하지만 볼티모어 미군 요새는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거기에 걸려 있던 불탄 성조기는 지금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미 국가(國歌)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은 당시 볼티모어 요새에서 끝까지 펄럭이던 성조기를 본 시인이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1835년엔 의사당에 온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게 총탄이 날아왔다. 영국 출신 이민자가 쏘았지만 다행히 빗나갔다. 미 대통령에 대한 첫 암살 시도였다. 1915년 독립기념일(7월 4일)엔 상원에서 다이너마이트 세 발이 터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재정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불만을 품은 하버드 대학 전직 교수가 터뜨린 것이다. 정회 중이라 사망자는 없었지만 상원 회견실과 부통령 사무실 등이 날아가 버렸다.

▶1954년 3월 하원 회의장에 괴한 4명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푸에르토리코 독립주의자들이었다. 하원 의원 5명이 중상을 입었다. 1971년에는 과격 반전 단체가 미 상원 화장실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9·11 테러 때는 알카에다의 공격 표적이 됐다. 테러범들은 당시 ‘UA 93편’을 공중 납치한 뒤 의사당으로 돌진하려 했지만 승객들의 저지에 실패했다.

▶미국 국가 1절은 이렇게 끝난다. ‘작렬하는 포화와/치열한 폭탄 속에서도…/오! 자유의 땅, 용감한 사람들의 땅 위에/성조기는 지금도/휘날리고 있다.’ 그 자유의 상징인 의사당이 다름 아닌 자국 국민에게 짓밟혔다. 200년 넘겨 지켜온 민주주의의 전당이 트럼프 시위대에게 공격당한 것이다. 난입한 시위대는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 이들에겐 노예제를 지키려 했던 과거 남부연합의 깃발이 더 어울렸다. 숱한 수난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온 미국 의회 의사당이 다시 한번 일어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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