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처럼 文 지키겠다" 또 떠나는 양정철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양정철(57) 전 민주연구원장이 다시 외유(外遊)를 준비하고 있다. 이달 중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양 전 원장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뉴질랜드와 일본 등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했던 첫 번째 외유와 문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의 이번 미국행은 성격이 다르다. 야인(野人)이었지만 양 전 원장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쳐왔고,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전략을 만들었다. 일부에선 “양 전 원장이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 대통령에게 고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양 전 원장은 최근 주변에 “생각은 달라도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의리’ 하나는 인정한다”며 “문 대통령의 첫 비서였던 나도 퇴임 후 마지막 비서로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7일 알려졌다. 문 대통령 임기 말까지 공직을 맡지 않은 채 퇴임 후를 미리 준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양 전 원장은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의 핵심 덕목은 의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 선임연구원으로 합류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8개월간 꾸준히 청와대행(行) 등이 거론됐지만, 결국 청와대나 정부에서 아무런 직을 맡지 않게 됐다. ‘권력 2인자’가 공직을 맡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한 여권 인사는 “그간 양 전 원장 거취를 놓고 끊임없이 말이 나왔지만, 정작 본인은 문 대통령에게 부담될 바엔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말해왔다”면서 “임종석, 노영민 실장에게 결례가 될까 봐 청와대 근처도 안 가고, 청와대로 간 후배들과의 만남도 자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출국을 앞두고 지난 5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과 만난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의 첫 비서이자 마지막 비서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원장 주변에선 “대통령 최측근이 비서실장을 맡아 국정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역할론’이 제기됐었다. 이번 비서실장은 문재인 청와대 마지막 실장인 만큼 문 대통령이 직접 요청하면 양 전 원장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 기조를 ‘국민 통합’과 ‘소통 강화’로 잡으면서 오랜 측근이자 강성 이미지가 있는 양 전 원장이 아닌 기업 출신인 유영민 비서실장이 낙점됐다. 양 전 원장은 이번 비서실장 인사를 앞두고 사석에선 “문 대통령이 이제는 국정 기조를 확실히 바꿔야 한다”며 불만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양 전 원장은 ‘대통령 문재인’을 만든 핵심 참모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정치는 하지 않겠다’던 문 대통령을 설득해 ‘정치의 길’을 걷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평소 “양비(비서관)”로 부르며 격의 없이 대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탁현민 의전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관 상당수가 ‘양정철 인맥’으로 분류될 정도로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뉴질랜드·일본에 머물던 양 전 원장은 2019년 2월 귀국했다. 그해 4월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해 인재 영입 등 민주당 선거 전략을 지휘하며 총선 압승을 이끌었다. 양 전 원장은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이 국회의원이나 공직을 맡지 않은 것을 두고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 “정권 실력자로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돼왔다.
민주당 일각에선 “양 전 원장이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로만 남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역할론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퇴임 후 문 대통령을 보호하는 최선의 선택지가 정권 재창출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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