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깐다이즘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2021. 1.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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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무산됐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매년 2000여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참혹한 현실을 바꾸자는데 누가 대놓고 반대할 수 있으랴만 유가족의 단식농성에 떠밀려 법 제정에 나섰다. 재계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과잉 입법이라며 항의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처벌의 강도는 적당한지 신중하게 논의한다더니만, 오늘(8일) 기업의 책임을 완화한 법안을 처리한다고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법을 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면 산업재해가 줄어들까? 한동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처벌 강화가 범죄를 줄이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범죄사회학에서는 이미 상식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제도를 만들어도 이를 악용하는 전략적 행위는 항상 튀어나온다. 물론 추가 법 제정을 통해 허점을 보완할 수는 있다. 그보다 우리는 법 밑에 깔린 더욱 근본적인 도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질 않는가? 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깐다이즘’, 위에서 까라면 무조건 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노동 규범. 일상을 비상시국으로 만들어 비합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자본가의 ‘캔두이즘’이 노동자의 버전으로 둔갑했다. 캔두이즘은 행위자의 주관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조건을 비상한 노력을 통해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바꾼다. 깐다이즘은 위에서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인간 한계를 넘어선다. 결국 죽음의 지점까지 행위의 자발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캔두이즘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깐다이즘이 내장한 죽음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성장을 내세워 3년 안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라고 지시한다.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거의 없는 육군 공병대와 현대건설이 캔두이즘으로 뛰어든다. 1968년 2월1일 기공식이 열리고 같은 해 12월21일 서울~수원 구간이 개통된다. 자신이 붙은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속도전을 명한다. 정주영은 현장에서 먹고 자는 특유의 캔두이즘을 발휘하여 노동자를 재촉했고, 공사 시작 2년5개월 만인 1970년 7월에 속성 완공한다. 한국 자본주의 동맥을 건설한 위대한 캔두이즘! 그 뒤에는 까라면 깐다는 정신으로 인간 한계를 부정하는 극한 노동을 일삼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77명이 있다.

깐다이즘은 박정희시대로 그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성장주의’에 빠진 모든 정권은 온당한 제도를 제공하지 않은 채 노동자에게 초인적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라고 강제한다. 이를 위해 일상을 비상시국으로 만든다. 현재 노동시장에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비정규직, 파견직, 하도급직, 특수고용직이 넘치고 넘친다. 외환위기 비상시국을 틈타 사실상의 강제 노동을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의 자발성을 훼손해서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다. 소명 의식을 갖고 헌신할수록 삶은 가혹해지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은 노동 착취가 아니라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CEO를 자처하는 경제인이 장악한 한국의 거의 모든 조직은 노동 단가 후려치고, 인력 감축하고, 과잉 노동시켜 이윤을 남긴다. 강제 노동으로 이윤을 착취하는 사실상의 노예제인 셈이다. 비상시국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노예 노동으로 원한이 쌓인 사람들이 불멸의 공동체를 만들 리 없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김용균이 노예주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깐다이즘을 실천하다 홀로 죽어가고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 정도가 아니라, 비상시국에 빠진 ‘노예제 일상’을 해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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