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겨울 숲에서의 환상경험

입력 2021. 1. 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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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꽤나 내린 눈 덕에 뒷산의 숲길을 걸으며 이 환상의 여행을 다녀왔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선들의 장기놀이에 빠져 구경하다가 나중에 보니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얘기가 바로 숲의 환상경험을 표현해 주는 게 아닐까 한다.

많은 연구가 밝히는 공통점은 이런 환상의 경험이 인공 환경에서보다 숲과 같은 자연 속에서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다.

숲이 가진 순결함과 경외감, 일상 환경과의 확연한 차이에서 오는 몰입이 환상과 신비와 같은 '정상경험'을 갖게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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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연말에 꽤나 내린 눈 덕에 뒷산의 숲길을 걸으며 이 환상의 여행을 다녀왔다. 눈으로 하얗게 장식한 겨울 숲은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신비의 나라에 온 것 같은 환상을 경험하게 한다. 마치 무릉도원의 세계를 경험하고 온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중국 진나라 때, 어떤 어부가 길을 잘못 들어 낯선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 사람들은 복숭아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숲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불렀는데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곳을 일컫게 됐다.

환상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빠지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된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선들의 장기놀이에 빠져 구경하다가 나중에 보니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얘기가 바로 숲의 환상경험을 표현해 주는 게 아닐까 한다. 환상과 신비의 세계는 마음이 복잡해지면 경험할 수 없다. 지금과 여기에 몰입해야 가능하다.

인본주의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매슬로(Maslow)는 '정상경험(peak-experience)'이란 이론으로 이런 환상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깊은 몰입과 황홀을 경험하는 순간을 말한다. 극도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됐을 때, 예술과 음악에 심취됐을 때 느끼는 최고의 절정경험이라고나 할까.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이런 정상경험이 심리적 건강을 가져오고, 타인을 보는 견해와 관계를 발전시키며, 창의력과 같은 자발성이 표출되어 궁극적으로는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보는 '자아실현'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상경험'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연구가 밝히는 공통점은 이런 환상의 경험이 인공 환경에서보다 숲과 같은 자연 속에서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사바나와 같은 숲에서 진화를 해 왔고 진화의 과정에서 녹아 있는 무의식이 활성화되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숲이 가진 순결함과 경외감, 일상 환경과의 확연한 차이에서 오는 몰입이 환상과 신비와 같은 '정상경험'을 갖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환상과 신비스런 경험을 갖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일상에 지치고 감성이 메말라 갈 수 밖에 없다. 그럴수록 자주 숲을 찾아 환상과 신비를 경험하고 우리가 가진 원초적 순수함을 되찾아야 한다. 도시와 숲이 우리에게 주는 자극은 매우 다르다. 도시에서 우리는 주로 방어적이고 긴박하게 대처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업무에 집중해야 하고 시간에 맞추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숲에서는 다르다. 내 자신이 주인으로 결정을 할 수 있고, 이길 아니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차선이 있으며, 촉각을 다룰 만한 결정도 없다.

지난 연말 눈 덮힌 환상의 숲 세상으로 여행은 짧은 시간의 여정이었지만 나를 동화와 신비로 이끌어 주었다. 거기엔 내가 해야 할 일의 마감시간이나 지켜야 할 약속이 없고, 그저 신비로운 아름다움만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설공주와 스머프들이 뛰어 노는 그곳에서 나는 반세기를 뛰어넘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마침 먹이를 찾아 내려온 어린 고라니 두 마리가 환상의 신비를 더해 주었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ㆍ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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