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씨 "풀빵 장사 접었지만 기부는 틈틈이 해야죠"

문주영 기자 입력 2021. 1. 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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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풀빵 아줌마' 이문희씨

[경향신문]

19년째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문희씨는 “못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정으로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동군 제공
18년째 500원 ‘자투리 돈’ 모아
올해도 32만여원 영동군에 건네
앞으론 본업인 농사하며 ‘나눔’
“정직하게 농사지으며 도울 것”

“실은 풀빵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가스불 냄새 때문에 천식을 앓은 지 7년 됐어요. 증상도 심해지고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손님들이 기침에 민감해해서 고민 끝에 풀빵 장사는 접었습니다. 앞으로는 본업인 과일 농사를 하면서 기부는 형편 닿는 대로 틈틈이 할 예정입니다.”

충북 영동군에서 ‘사랑의 풀빵 아줌마’로 알려진 이문희씨(59)가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작지만 따듯한 나눔을 실천했다. 7일 영동군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 양강면사무소를 방문해 32만3000원이 담긴 봉투를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그는 풀빵을 팔아 모은 ‘자투리 돈’으로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2002년부터 이어오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풀빵을 굽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매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영동읍 중앙시장 앞에서 풀빵을 팔곤 했다.

이씨는 “작년 봄까지 풀빵 장사를 하다가 건강 악화로 지난여름 사정이 딱한 분께 자리를 넘겨드렸다”며 “장사를 그만두다보니 이번에 기부한 금액이 예년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그가 풀빵 장사를 시작한 것은 1999년 9월이었다. 농사일이 잘되지 않아 아이들 학비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장사에 나섰다고 한다. 당시 오전 7시40분쯤 집을 나와 세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했다.

손님이 풀빵 값으로 지불한 돈 중 500원짜리 동전들은 따로 돼지저금통에 넣었다. 그는 “500원짜리가 적게는 하루 1~2개, 많게는 하루 20여개씩 들어왔는데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았다”고 밝혔다.

이씨의 선행은 그가 매년 같은 시기에 돈봉투를 놓고 가는 것을 눈여겨본 한 공무원의 제보로 알려지게 됐다. 그의 사연이 한 공중파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씨는 이때부터 ‘사랑의 풀빵 아줌마’로 불리게 됐다. 당시 방송을 진행했던 배우 최불암씨는 방송 후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와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남동생과 단둘이 살다보니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았어요. 당시 남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라면 몇 봉지, 봉지쌀 등을 간간이 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런 기억 때문인지 ‘못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 마음 헤아린다’고 많은 돈은 아니어도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마음먹게 됐어요.”

이씨는 이 같은 나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정부로부터 국민포장도 받았다. 그는 “별것 아닌 일에 나라가 큰 상을 줬다”며 “가족들 모두 영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영동에서 줄곧 농사를 짓고 있다. 자두·포도 등 과일 농사를 주로 했다. 현재는 복숭아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 이상 기후로 복숭아를 제때 수확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는 그는 “요령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농사지으면서 기회 되는 대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전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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