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별 "치킨이 더 좋아서 간 야구장..이젠 수백 경기 봐도 안 질려" ['유리천장' 뚫은 킴 응, 한국 야구에도 있다 (2)]

이용균 기자 2021. 1. 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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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별 세계 야구소프트볼연맹 토너먼트 코디네이터

[경향신문]

박은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토너먼트 코디네이터가 방망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큰 사진). 위·아래 작은 사진은 박은별씨가 여자 국제소프트볼대회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과 동료들과 함께한 기념촬영물. 박은별씨 제공
본부 정규직 25명 중 10명이 여성
야구·소프트볼의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 기획·운영 맡아
비선출 직원으로 ‘다양성’ 확보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단장인 킴 응 마이애미 단장은 199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인턴으로 야구단 커리어를 시작했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단장 보좌를 거쳤고 2011년부터 조 토레 전 양키스 감독과 함께 메이저리그 사무국 운영부문 부사장으로 일했다. 메이저리그가 최근 도입한 해외 아마추어 선수 계약 총액 제한 등이 킴 응이 일궈낸 성과다.

한국에도 구단과 리그에 여성 직원이 있지만, 리그와 구단을 운영하는 업무에는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그 천장을 조금씩 깨뜨려가고 있는 인물 중 하나가 박은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토너먼트 코디네이터(29)다. 스위스 로잔의 WBSC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비선출, 여성이자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다. e메일 인터뷰에서 박씨는 “WBSC 본부에는 정규직 25명이 있고 그중 10명이 여성”이라며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성평등이 비교적 늦게 자리잡는 나라지만 개선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6년부터 WBSC에서 일했다. 대한체육회 인턴십 파견 프로그램에 참가해 WBSC와 인연이 닿았고, 1년의 인턴십을 거쳐 정규 직원이 됐다.

야구와 소프트볼의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를 기획 운영하는 토너먼트 코디네이터가 박씨의 역할이다. 2018년 부산 기장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2019년 한국과 일본 등에서 열린 프리미어12 대회 등의 운영을 맡았다.

박씨는 “선수단은 물론 심판, 기록, 기술진, 방송중계진 등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숙박, 식음, 수송과 회의, 통역, 보험, 도핑 컨트롤 등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대회 하나를 치르는 데 수개월의 준비가 필요하고, 주최국과 참가국 연맹들과의 끝없는 소통과 논쟁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WBSC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도록 전반적인 요소들을 잘 준비하도록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구와의 인연은 깊지 않지만,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컸다. “예전에는 잠실구장에 가도 야구보다 치킨과 응원이 더 좋았다. 지금은 1년에 수백경기를 보는데, 신기하게 질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보면서 올림픽이라는 행사에 관심이 생겼고,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에 진학했다. “올림픽에서 일하고 싶은데, 정작 올림픽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더라”며 “그래서 대한체육회의 문을 두드렸고, 각종 올림픽 아카데미에 참석했다. 2013년 동계스페셜올림픽,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인연을 통해 인턴십 파견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WBSC에서 일하게 됐다.

야구는 여전히 성차별이 있는 종목이다. 야구는 남자, 소프트볼은 여자 종목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박씨는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렀지만 야구대표팀의 여성 코치는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WBSC 본부에서의 차별은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차별적 시선은 여전하다. 박씨는 “여자인 데다 아시아인이고, 어리다는 점에서 삼중고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대부분 나라 연맹 사람들과 알아서 그런 부분은 나아졌다. 고생을 몇 년 했더니 얼굴에 연륜이 쌓여서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단지 성차별을 극복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박씨는 “젠더 문제를 떠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남성, 여성을 떠나 비선출 직원으로서의 장점은 뚜렷하다. 선수 출신은 너무 경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과 해석, 계획은 달라지고, 그 ‘다름’이 발전과 진보의 밑거름이다. 같은 이유로 더 많은 한국인들이 국제스포츠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씨는 “저 같은 직원보다 임원, 위원분들이 여러 종목에 더 많아지면 국제 스포츠 외교, 정책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WBSC에는 이종열 SBS 스포츠해설위원이 유일하게 기술위원회에 포함돼 있다.

박씨는 2021년에 “커미션 리에종 역할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WBSC 선수위원회, 여성스포츠발전위원회, 여성야구위원회를 담당한다. 박씨는 “앞으로 많은 것들이 바뀔 거라 생각한다. 킴 응이 메이저리그의 첫 여성 단장이 되면서 세계가 열광하는 걸 보았고, 저를 비롯해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야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야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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