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의심 아동 즉시분리가 해법?..여야 입법 속도전에 우려

박은하 기자 2021. 1. 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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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쉼터 이미 포화.."분리 땐 불안·공포 더 강해질 수도"
경찰 전문성 미흡·전담 기관 제한적 개입 등 문제점 여전
현장 전문가 "입법 늦어지더라도 실태 조사 먼저" 목소리

[경향신문]

“정인아 미안해” 법원 앞 추모 화환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양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지난 7일 양부모 재판이 열릴 예정인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정문 앞에 놓여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가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동학대 피해를 지원하는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 시 즉각분리 조치나 아동학대범죄 법정형 강화 등이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학대 의심 신고가 두 번 발생하면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각분리하는 조치이다. 정인이가 숨지기 전 어린이집 교사 등이 세 차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분리조치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불거져 지난 2일 관련 법이 통과돼 오는 3월부터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분리될 아동들이 갈 곳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1000명 수준인 전국 학대 피해 아동 쉼터가 포화상태이다. 조치가 시행되면 쉼터에서 퇴소하는 아이가 나오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학대 의심 신고가 두 번 있었다고 모든 아동들이 반드시 분리조치돼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집에 머물기를 원하는 아동도 있다. 한 아동보호 전문가는 “분리 효과는 학대 종류와 가해자와 관계 등에 따라 사안마다 다르다. 쉼터로 분리되면 자신이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불안과 공포가 더 강해지는 아동도 있다”고 했다. 대전지법 임수희 부장판사는 “분리 자체보다 분리 과정과 방법, 내용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폭력과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아동학대 방지 법안들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도외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의 경우 수사가 가능하지만 3교대 근무에 순환인사를 하는 구조에서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아동학대 전담 기관은 심리치료 등을 하지만 민간 위탁인 경우가 많아 부모와의 분리 등 강제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개입이 제한적이다.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국회는 관련 법을 개정해 지난해 9월부터 아동전담 공무원도 조사권을 갖도록 했다. 치료 지원 등에 특화된 아동전담 공무원이 범죄 행위를 조사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각 기관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도록 해야 한다”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업무에서 조사권을 제외하고 현황 파악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경찰은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전문 수사팀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범죄 형량을 높이는 법안들이 최근 무더기로 발의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 변호사는 “형량이 높아지면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위해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무죄 선고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입법이 늦어지더라도 실태조사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영국 정부와 의회는 2000년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공동 조사단을 꾸려 2년간 기존 아동보호체계를 조사한 후 보고서를 냈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은 현장에서 전문가의 재량이 중요한데, 학대 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재량을 축소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며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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