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입양 가정'이 문제의 본질 아니다
[경향신문]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지시한 사항이다. ‘정인’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영아의 입양 전 이름이다. 국회도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일부터 6일까지 3일 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입양특례법,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안만 14개에 달한다.
정치권의 빠른 대처는 반길 만한 일이다. 단 하나의 어린 생명도 어른의 폭력으로 사그라들어선 안 된다. 입양 절차와 사후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돼야 한다. 경향신문 보도로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의 미흡한 조치가 드러났다. 4개월간 학대 정황을 알고도 신고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은 행태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이 있다. 입양이 사건의 본질처럼 거론된다는 점이다. “입양 절차에 대한 관리·감독뿐 아니라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입양 절차에 있어 아동 이익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입양특례법 4조의 원칙이 철저하게 구현되도록 해달라” 등 대통령 발언을 보면 입양 절차 담당 기관과 입양 가정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아동학대 전반에 관한 언급은 없다.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과연 ‘입양 가정’ 탓일까.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친부모 가정에서 벌어진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 통계를 보면 그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3만45건 중 72.3%가 친생부모의 손에서 벌어졌다. 양부모의 아동학대는 94건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유형과 특성을 분석한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등의 2019년 논문을 보면 2018년 학대 사망 아동 28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 25건이 친생부모 소행으로 나타났다. 3건은 베이비시터, 보육교사 등이 저질렀다. 입양 가정에서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입양기관에 대한 감시 필요성을 말하고 입양 절차에서 공공성을 증진하자는 주장은 필요하다. 다만 입양 가정에서 벌어지는 학대가 전체 아동학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입양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수많은 원인을 외려 살피지 못하게 된다. 입양에 대해 낙인만 찍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제는 입양이 아니다. 정부의 관심이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사후 관리할 시스템 개선으로 이동하길 바란다.
사회부 | 조문희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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