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유족들 "정치놀음하던 국회, 생색내기 법안"

윤지원·김은성 기자 2021. 1. 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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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용균이에게 보여주기도 창피한 법안"
"사람이 먼저다 내건 정부 노동자와 가족은 배제돼"
"생명에 차별 둔 누더기법" 노동계·시민단체 반발

[경향신문]

우려가 현실로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씨(앞줄 가운데)가 7일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제외·50인 미만 사업장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산업재해 피해자 유족들과 노동계, 시민단체들은 “사람의 생명에 차별을 둔 누더기법”이라고 반발했다.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씨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현 정부가 내건 ‘사람이 먼저다’와 ‘생명 존중 사회’에 우리 같은 노동자와 그 가족은 배제되고 있는 것 같다”며 “제대로 된 법안 통과를 기다렸던 유족들이 또다시 좌절하실 걸 생각하면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화력발전소 안전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통화에서 “국회가 사람 목숨을 놓고 정치놀음을 하다가 보여주기식 법안 만들기에 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곳곳에서 일하다 죽은 아들·딸들과 시간이 멈춰버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하늘에 있는 용균이에게 보여주기도 창피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회의 등 마지막 남은 절차에서 제대로 된 법안이 통과돼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지해 달라”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도 적용을 받지 못해 온갖 차별을 받아야 했던 이들은 죽어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연평균 300여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돌아가신다. 300개가 넘는 우주가 사라지는 일에 국회의원들은 관심이 하나도 없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산업재해에서 80%를 차지하는데 겨우 20%를 보호하면서 중대재해법을 만들었다고 생색내선 안 된다”고 했다. 또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해 고용, 임금, 복지 등 모든 노동 조건에서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죽음마저도 차별을 당할 처지에 내몰렸다”며 “재계의 요구만 대폭 수용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이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있으나 마나”라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안병호 한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작은 규모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대개 돈이 없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안전 보장 없이) ‘일단 찍자’고 한다”며 “법이 통과되더라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누군가 다칠 것 같은 위기에 촬영을 그만하라고 말을 못할 수 있는데 작은 규모 사업장엔 아예 법 적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에서 “사람의 생명에 차별을 두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라며 5인 미만 사업장 배제 부분을 비판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국회 법사위를 항의 방문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서에서 “이 법은 힘없는 중간관리자와 하청이 아닌,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윤을 거둬온 대표이사와 원청, 그리고 발주처의 책임을 묻는 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5인 미만 사업장 배제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조항을 없애고, 발주처 및 직장 내 괴롭힘 형사책임, 경영자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 공무원 처벌 조항을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등 10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법사위원 연락처를 시민들에게 공유하며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배제 철회’를 요구하는 문자행동을 제안했다.

윤지원·김은성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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