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존중' 희망고문 일삼는 문재인 정부 [뉴스분석]
[경향신문]
당정, 야당·재계 핑계로 내용 후퇴
속전속결로 진행 검찰개혁과 대비
정규직화·최저임금 등도 용두사미
노동관련 ‘확고한 철학·방향’ 없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이 법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가 제시한 안은 정부안에서 한 번 깎이고, 여야 합의안에서 또 깎였다. 처벌 강도와 벌금 액수를 낮췄고, 회사가 책임져야 할 범위는 좁히고, 법 적용 대상은 줄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5~49인 사업장의 법 적용은 3년간 미뤘다. 산재사고 사망자의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중대재해 근절이라는 법 취지가 무색하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용두사미에 그친 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추진됐지만 상당수는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분란의 불씨는 남았다. 자회사 채용을 놓고 갈등을 빚은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목표였던 정규직화 민간 확산도 아무런 성과가 없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했다. 그 연장선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임기 첫해와 둘째 해 두 자릿수 인상률로 올랐던 최저임금은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인상률(1.5%)을 기록했다. 여야는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던 식대 등을 최저임금에 넣음으로써 실질 최저임금이 떨어지는 효과가 생겼다. 여당은 대선 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유로 지난달 재계 요구를 일부 반영한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정작 협약 비준은 국회에서 멈춰 있다.
노동 관련 법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검찰개혁 법안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다. 민주당은 야당 반발을 뚫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노동법 앞에선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인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를 만났다. 김 원내대표가 “야당이 (중대재해법) 심의를 거부해 악조건”이라고 하자, 김씨는 “여태까지 (민주당이 원한 법안은) 다 통과시키지 않았느냐”고 했다. 여권이 노동과 관련해 보이는 행태의 본질을 통찰한 물음이다.
노동 관련 법 제·개정은 노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이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으로선 재계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경제환경이 악화하면서 기업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하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확고한 철학과 방향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촛불항쟁으로 치러진 대선 국면에서 높아진 시민 요구에 맞추려 파격적인 노동공약을 대거 내놓았지만 정권 출범 후 재계 등의 반발에 정책을 철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권리 문제가 아닌 맞바꾸기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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