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경영계 압박에 밀렸다
[경향신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7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원안보다 처벌 수위·범위가 대폭 완화되면서 국회가 경영계의 빗발치는 민원 앞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사위는 논의 과정에서 당초 정부 수정안에 포함돼 있지도 않던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조항까지 받아들였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오히려 보호의 혜택을 뒤늦게 받거나 받지 못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또다시 빚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의 법사위 상정이 가시화된 지난해 말부터 법안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 ‘입법 중단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애초 거대 양당이 중대재해법 제정 의지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측 민원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중대재해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국민의힘 역시 “단 한 번의 중대재해로 회사 문을 닫을 것”(김희국 의원)이라는 반발이 나오는가 하면 “(중대재해법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데 과연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겠느냐”(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당내 교통정리를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법안소위에서는 당초 정부안에 있지도 않던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배제’까지 들어가며 경영계 입장을 대폭 받아들인 합의안이 의결됐다. 지난 6일 열린 법안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중소기업벤처부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말아 달라”고 건의했고, 이에 김도읍 의원 등 국민의힘 측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 수는 전체의 50%인데 사망 비율은 20%밖에 안 된다”며 강하게 동조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이 “엄청난 산재가 그곳에서 발생한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중기부 의견이 관철된 채 논의가 마무리됐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정작 혜택은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돼버린 셈이다. 이는 ‘주 52시간 근무’ 도입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 초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에도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은 52시간제의 단계적 적용을 강하게 요구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예상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 52시간제를 기업 규모에 따라 6개월에서 최대 2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정리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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