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껍데기 중대재해법으론 노동자 죽음의 행렬 못 막는다
[경향신문]
여야가 7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합의 통과시킴에 따라 법이 본회의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그 내용은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했다. 노동자와 시민을 중대재해로부터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가 사라졌다. 여론에 떠밀려 만든 법안조차 경영계의 눈치만 살핀 결과이다. 여야의 무책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법안 내용을 뜯어보면 도저히 중대재해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을 법 밖에 그대로 둔 것이다. 다만 원청업체에는 법이 적용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크게 뒷걸음질한 내용은 처벌 조항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원 이하’로 처벌하는 것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재벌 경영자 역시 산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법 시행 유예조항은 중대재해법을 한층 퇴보시켰다. 50인 미만 기업은 법 시행이 2년 유예됐다. 공포 후 3년이 지나야 중대재해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약 80%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약 98%다.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3년 후에나 법이 적용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촘촘했던 중대재해법의 법망이 헐거워졌다. 이런 구멍이 숭숭 뚫린 법으로는 산재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자는 약 860명이다. 2019년 사망자 855명보다 늘었다. 지난해 1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산재 사망이 줄어들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정책조정회의에서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근절되고 산업안전을 위한 사회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는 전날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더기 산업안전법으로 제2의 김용균을 막지 못하고 또다시 중대재해법까지 껍데기로 만든 여당 지도부에 절망한다. 그 후과는 반드시 감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500명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선 중대재해법 앞에 달린 ‘껍데기’ ‘누더기’라는 오명을 벗겨내야 한다. 여야는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에도 노동 현장의 산재 사망을 막을 수 있도록 관련 법안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온전한 중대재해법만이 노동자들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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