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죽음에 '땜질 대응'.."부끄러워 말 안 나올 지경"

조익신 기자 입력 2021. 1. 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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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앵커]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진 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현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땜질식 처방'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 조익신 반장이 정리했습니다.

[기자]

< 정인이 죽음에 '땜질 처방'?…"부끄러워 말이 안 나올 지경" >

하루가 멀다하고, 정인이의 이름을 애달프게 외치고 있는 국회. 현재 발의된 '아동학대 방지' 법안만 40여 건에 이릅니다. 내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죠. 이른바 '정인이법'을 처리하기로, 여야 간의 합의도 끝난 상황입니다.

정치권이 간만에 밥값을 하는 모습, 일단은 칭찬할 만합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죠. 빵 찍어내 듯 급하게 쏟아낸 법안들, 현장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입니다.

[노웅래/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난 4일) : 정인이의 가엾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동학대 형량을 2배로 높이고 학대자 신상을 공개하겠습니다.]

[김예원/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KBS '주진우 라이브' / 지난 5일) : 형량을 올려버리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굉장히 힘든 엄중한 입증 책임을 지게 돼요. 피해 아동이 장애가 있다거나 너무 어려서 스스로 자기 피해를 발언하기 어려운 사건일 경우에는 오히려 이게 덫이 되어서 제대로된 사법 처벌을 받을 수 없고 그런 것들이 기대되기 어려운 사건에 심지어 기소조차 되지 않아요.]

정인이를 원가정에서 즉각 분리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원인 분석도 있었죠. 이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깁니다.

[김태년/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난 5일) : 선제적으로 분리 보호하는 즉각 분리 제도가 올해 3월부터 시행됩니다. 입법이 반년만 빨랐어도 이런 참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습니다.]

[승재현/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JTBC '소셜라이브 이브닝' / 어제) : 아동을 분리했을 때 갈 수 있는 장소는 72개밖에 없다 이게 엄청난 문제인 거거든요. 제가 원가정 보호주의를 포기하자고 그렇게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걸 적극적으로 입법화시킬 수 없는 게…이 쉼터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이 시설 자체가 아이에게 또 하나의 2차 피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쉼터에서 보살피고 있는 분리아동은 전체의 10%밖에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은 지금도 가출청소년 쉼터나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즉각 분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땜질식 처방을 내놓기는 경찰도 마찬가집니다. '아동학대 예방 및 근절 종합대책'입니다. 전문 수사팀 아동학대사건 전담 현장 체크리스트 작성 상급자보고 학대 신고 가정 데이터베이스 구축 아동학대 신고 3회 이상 '구속 수사'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차례에 걸친 정인이 학대신고. 경찰이 그대로 묵살했었죠? 이 대책들, 이번에 내놓은 거냐고요? 아닙니다. 지난 2014년, 울산 울주와 경북 칠곡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경찰이 발표한 대책들입니다. 이때 약속한 사항들만 제대로 지켰어도, 정인이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어제 대국민 사과를 하며, 또다시 여러 대책들을 내놨는데요. 이번에는 과연 지킬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정인이의 몸에 생긴 '멍'과 '몽고반점'도 구분하지 못한 경찰이니 말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여당의 리더십입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당청정 원팀을 강조했었죠.

[박성민/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난 4일) : 우리 민주당은 집권여당답게 당·정·청 원팀의 정신으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당·정협의를 추진하고 이같이 가슴 아픈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저 입법에만 속도를 내고 있는 겁니다. 예산, 인력 등 당정청이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할 때인데 말입니다. 어제 이낙연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낙연/더불어민주당 대표 (어제) : 현장의 담당은 경찰이 하지만 그 뒤에서 정책은 복지부가 한다든가 보호나 처벌은 법무부가 관계된다든가 이렇게 뭔가 좀 혼란스러운 거버넌스 체제가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것도 있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인력 부족, 예산 부족을 탓하는데 그것도 쉽게 개선이 안 되고… 이건 뭐 부끄러워서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3년 전, 고준희 양이 부모의 학대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죠.

[이낙연/당시 국무총리 (2018년 1월) : 고준희 양 사건은 우리의 아동학대 방지 체제에 여전히 허점이 크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위험에 처한 아이를 일찍 찾아내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과정에 맹점이 있음을 뼈아프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뼈아프게 깨우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면 이젠 제대로된 대책을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총리 경험이 있는 여당 대표라면 말입니다.

< 중대재해법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정의당 "기업살인 방조법"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습니다. 여야 간에 합의된 법안의 주요 내용부터 살펴볼까요. 우선 중대재해의 정의는 사망자 1인 이상입니다. 적용 대상에선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습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 적용이 3년 유예됩니다. 쟁점이었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삭제했습니다. 여야는 내일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인데요. 더불어민주당은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김태년/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산업재해 희생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경청했고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중대재해법은 과거 성장 위주의 개발시대를 거치며 누적된 산업현장의 병폐와 관행을 끊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의견은 수렴했지만, 모두 반영이 된 건 아닌 듯합니다. 당장 정의당에선 '기업살인 방조법'이라며 '개악'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김종철/정의당 대표 : 참담합니다. 내 직장동료가 다섯 명이 되지 않으면 죽어도 벌금 몇 푼, 목숨값을 내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누구 하나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27일째 단식 농성 중이죠.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도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김미숙/고 김용균 씨 어머니 : 진짜 국민을 생명을 담보해 주고 보장해 줘야 될 국회나 국가가 이걸 완전 외면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서 아주 불신이 더 커졌습니다.]

노동계도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한국노총도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재해 사망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는 겁니다.

[이상진/민주노총 부위원장 : 산재사망 반으로 줄인다고요? 개떡 같은 소리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이 나라의 정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시해야 될 정치인들의 본령이 이겁니까?]

여당에서 법안을 처음 발의했던 박주민 의원도 법안이 후퇴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의원 (BBS '박경수의 아침저널') :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나 아니면 소상공인 경우에 업종별 특성이나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일정 정도는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통으로 다 빠지고 하는 부분이 과연 산업재해라든지 또는 시민재해를 막겠다는 법치상 맞느냐 이런 아쉬움이 좀 크고요.]

정의당과 노동계는 법안을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당장 재계에선 정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재계의 요청사항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며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했다는 건데요. 입법 중단까지 요구했습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 중대재해법. 그래서일까요. 민주당은 유독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김태년/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여야 합의로 중대재해법을 의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뜻깊습니다.]

비판의 화살도 여야가 사이좋게 나눠 맞자는 이야기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요.

오늘 국회 발제 이렇게 정리합니다. < 정인이 죽음에 '땜질 처방'?…"부끄러워 말이 안 나올 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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