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가 점령당했다

정의길 2021. 1. 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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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바이든 당선']트럼프 지지자들 의사당 난입
대선 불복 폭력 점거..4명 사망
의회,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증
트럼프 뒤늦게 "질서있는 이양"
지난해 11월3일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시각)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에 난입한 가운데, 한 지지자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2021년 1월6일 오후 2시20분(현지시각)부터 약 3시간20분 동안, 11·3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Capitol Hill)을 점령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된 이 충격적인 장면은 미국 민주주의가 수사를 뛰어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방증했다. 같은 공화당 출신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 “이런 식으로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바나나공화국(부패 등으로 정국 불안을 겪는 국가에 대한 경멸)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통탄했다.

“여러분들이 지독하게 싸우지 않으면, 더 이상 조국은 없을 것이다. 나약한 자들을 몰아내자. 힘을 보여줄 때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의사당으로 걸어가서, 우리의 용감한 상·하원 의원들에게 갈채를 보낼 것이다.”

이날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지지자들을 격동시켰고, 현직 대통령의 선동은 참사의 전조였다. 50분간의 연설 동안 지지자들은 트럼프 깃발을 흔들며 ‘도둑질을 멈추라’는 구호를 외쳤고, 흥분한 지지자 일부가 이미 의사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최종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던 의회를 폭력적으로 점거했고, 바리케이드를 부수던 여성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등 총 4명이 숨졌다.

트럼프는 지난 12월20일에도 트위터에 “1월6일 워싱턴에서 대형 항의시위. 거기서 거칠게 하자!”고 사태를 예고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공화당의 상·하원 의원들도 6일 의회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며 끊임없이 대선 불복 여론을 부추겼다. 결국 수천명이 워싱턴 의사당 앞으로 모였고,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 등 각 주 의사당 앞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사실상 전국적인 ‘봉기’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시위가 아니라 반란”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즉각 중단시키라고 촉구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여러분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거가 도둑맞았다… 그러나, 이제 집으로 가야 한다”며, 이들을 “위대한 애국자들”이라고 치하했다.

이날 저녁 8시 재소집된 상·하원 합동회의는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 작업을 속개했으나, 이날 사태를 부른 미국의 극심한 분열과 불신은 의사당에서 다시 드러났다. 적지 않은 공화당 의원들이 일부 경합주의 선거 결과에 문제가 있다며, 해당 주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을 거부 안건으로 발의했다.

애리조나와 펜실베이니아의 선거 결과 인증 거부 안건 등이 받아들여져, 상·하원 의원들은 다시 각자의 의사당으로 돌아가 이를 결정하는 투표를 해야만 했다. 미 의회는 이런 전례 없는 진통 끝에 애초 확정 일정을 하루 넘긴 7일 새벽 선거인단 306명을 확보한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인증했다. 선거인단 232명을 확보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야 성명을 통해 “결과에 반대하지만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와 행정부 안팎에서는 트럼프에게 앞으로 남은 2주의 임기도 더는 보장해선 안 된다는 분노가 들끓었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요구다. <시엔엔>(CNN)은 공화당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내각의 일부 구성원들이 이에 대한 사전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하원 법사위 의원 전원은 이날 성명을 내어 “대통령이 직무에 적합하지 않으면, 부통령이 내각의 동의를 얻어 그 직을 승계하는 조항인 헌법 25조를 발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이 국민들의 투표 결과를 놓고 법원과 의회 등으로 분쟁을 확산시키는 현실은, 민주주의에서 최고 의사결정인 주권자의 투표 등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미 고메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사태에 대해 “쿠데타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민주주의가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말한다”고 비감스러워했다. 미국과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 제도 작동에 대한 새로운 각성으로 이어질지, 오히려 분열과 불신이 악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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