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폭정' 목숨 건 취재.. 시대가 외면한 진실을 알리다

김신성 2021. 1. 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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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기자의 실화 다룬 '미스터 존스'
우크라이나 대학살 '홀로도모르' 폭로
집단 농장 추진하다 농부들 저항하자
부농들에 책임 물어 모든 곡물 쓸어가
대기근에 전체 인구의 25%가 굶어죽어
英기자 가레스 존스의 기자정신에 주목
처참한 현장 알리려 힘겹고 외로운 싸움
1935년 내몽골서 납치돼 총에 맞아 숨져
당시 처참한 현실·존스의 고뇌 큰 울림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새영화 ‘미스터 존스(Mr. Jones)’는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학살 ‘홀로도모르’를 보도한 전설적 기자 가레스 존스의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1000만명이 굶어죽었다. 1933년 3월 우크라이나 집단농장의 절반은 곡물 배급이 중단되어 대기근을 겪었다. 농민들은 식량과 사료가 떨어지자 가축을 도살하며 버텼으나 대부분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져 갔다. 그 해 연말까지 전체 인구의 25%가 사망했다. 하루에 분당 17명씩 2만5000명이 죽어나간 경우도 있었다. 33개 지역에선 식인 사례가 발견됐다.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Holodomor)다.

우크라이나는 땅밑 1.5m까지 흑토(체르노좀)여서 씨만 뿌려도 농사가 되는 지역이다. 미국의 프레리, 아르헨티나 팜파스, 중국의 둥베이와 함께 세계적인 옥토로 꼽힌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1932년 집단농장을 추진했던 스탈린은 개인농장 중심의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심하게 저항하자 농산물 수출로 산업화 자본을 마련하려던 계획에 위협을 받는다. 그는 부농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 모든 곡물을 쓸어갔다. 우크라이나·헝가리·리투아니아·미국 등은 이 사건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공식 인정했다. 사회 기반시설의 붕괴 또는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상의 결정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11월 네 번째 토요일에 대기근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영국 기자 가레스 존스는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현장의 처참함을 취재해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당시 모스크바 주재 서방 기자들은 대체로 친소련 성향이이어서 존스의 보고가 거짓, 과장되어 있다고 왜곡했다. 존스의 기사는 번번이 실리지 못하다가 뉴욕 이브닝포스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의 월터 듀란티는 곧장 반박 기사를 냈다. “존스의 터무니없는 기사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소련의 상황이 이상적이진 않지만 … 스탈린은 여전히 ‘근대화를 위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존스는 소련 입국금지 처분과 공작원에 의한 감시를 받다가 1935년 내몽골에서 납치되어 30세 하루 전날 총에 맞아 살해됐다. 그러나 존스의 취재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그의 기사는 재평가받았고, 그를 의도적으로 폄훼했던 듀란티를 비롯한 기자들은 언론윤리를 저버린 자들로 기록됐다.

‘험한 시대’를 산 존스는 사실을 보도하려다 죽어간 ‘참’ 기자다. 사명감으로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쳤다.

소련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차일드 44’에서는 이 대기근을 한 줄로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줄어들어 버렸고,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늙어버렸다.”

세계적인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신작 ‘미스터 존스(Mr. Jones)’는 ‘홀로도모르’를 보도한 전설적 기자 가레스 존스의 일화를 영상에 옮긴 작품이다. 1930년대 초 런던. 히틀러를 인터뷰한 최초의 외신기자로 주목받은 전도유망한 기자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 그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선전하는 스탈린 정권의 막대한 혁명자금에 의혹을 품고, 직접 스탈린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그곳에서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 월터 듀란티(피터 사스가드)를 만나 협조를 청해 보지만, 현실과 타협한 그에게 실망하고 만다.

“저널리즘은 가장 숭고한 직업이에요. 진실은 오직 한 종류뿐. … 사실을 따라 어디든 가야만 하죠.… 누구의 편도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존스는 술을 안 마시며 여자도 여자로 안 보고 일만 하는 기자다.
존스의 투철한 기자정신에 마음이 움직인 베를린 출신의 기자 에이다 브룩스(바네사 커비)가 진실에 접근할 실마리를 건네준다. 떠나기 전 존스가 에이다에게 시도하는 서툰 포옹은 어쩌면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지만, ‘탈없이 잘 갖다올게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계속되는 도청과 미행, 납치의 위협 속에서 가까스로 우크라이나에 잠입한 존스는 기차 안에서 굶주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 남자는 빵 한조각에 외투를 기꺼이 바꾼다. 아이들은 존스가 버린 오렌지 껍질을 주워 가기 바쁘다.

역에서는 곡물을 져나르는 인부들로부터 “모든 곡식이 모스크바로 간다”는 말을 듣는다.

마을에 들어서자 비쩍 마른 아이들이 노래한다.

“스탈린이 연주하네, 견과류로 만든 바이올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우리집에도 굶주림이 찾아왔네.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없네. 이웃들은 정신이 나가서 자식을 잡아 먹었네….”

극 초반부 누드가 있는 마약파티의 황금색조와 대비되는 온통 청회색 화면은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롯이 사실만을 전하는 효과가 두드러진다.

카메라 워크도 훌륭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존스가 집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집 안에서 창을 통해 잡아낸다. 그는 바깥에 있는 주변부 인물이다. 자신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고 바깥을 떠돌아야 하는 신세를 한 장면에 담아내 보인다. 집 안에 들어온 존스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저 쫓겨났어요.” “앉거라. 차를 끓여오마.” 이번에는 창 밖에서 안을 찍는다. 존스를 받아주는 가족의 따스함과 위로를 객석까지 그대로 전달한다. 카메라는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는 존스의 모습도 창 안에서 바라본다. 존스가 집으로 걸어올 때와 같은 시각인데도 느낌은 사뭇 다르다.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당당하고 여유롭다.

영화에는 조지 오웰 역도 등장하고 그의 소설 ‘동물농장’의 일부도 인용된다.

“미국은 소련을 공식적으로 승인… 미국 기업주들은 교역 확장의 기회라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 입니다”라는 라디오 뉴스가 나오자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번 보고 인간을 한번 보고, 돼지와 인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어느 쪽이 인간이고 돼지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는 인용 내레이션이 흐른다. 주제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더러운 자들(권력+언론)이 한 편을 먹으면 진실(정의)이 어떻게 뭉개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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